일본 수출 규제가 우리 경제에 당장 치명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체인(공급사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12일 개최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분석과 전망' 현안토론회에서 김규판 KIEP 선진경제실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를 언급하면서 “위기의식을 일깨운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반도체 산업에 그렇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경제연구원은 일본 수출규제로 반도체 소재가 30% 부족해지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2.2% 감소하고, 우리 정부가 맞대응에 나서면 3.1%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포토레지스트는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것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절대적 경쟁력을 확보한 메모리반도체와 무관하다”면서 “규제 대상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사업인 시스템반도체와 관련됐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장기적으로 수출 규제가 지속되면 우리 반도체 산업의 중장기 성장을 위협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배찬권 KIEP 무역통상실장도 “일본 수출 규제로 우리 성장률이 큰 폭 저하되는 수준까진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에 대해선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 신규 투자에는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 기업이 쉽게 투자결정을 내릴 것으론 생각하기 어렵다”면서 “중국 업체도 지금 상황에서 쉽게 결정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지속되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미국, 중국 등 세계 기업이 피해를 볼 것이란 분석이다.
이상훈 KIEP 중국권역별·성별연구팀장은 “중국 내에선 일본 수출규제가 중국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라면서 “한국 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가치사슬로 엮인 미국, 중국, 일본 등 기업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어 일본의 '마구잡이식 제재'를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영 KIEP 원장도 “일본의 수출규제는 산업계의 복잡한 서플라이체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린 결론”이라면서 “상황이 지속된다면 결국 일본에 패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조치는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의 제11조1항(사실상의 수출제한조치), 제1조1항(최혜국대우의무 위반) 등에 저촉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정당화를 주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천기 KIEP 부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입장에 비춰볼 때 국가안보 예외조항인 제21조를 원용할 가능성이 현재로서 가장 높다”면서 “일본이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자의적 남용 없이, 진정 국가안보 보호 목적으로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