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성 나만애(愛)실리콘하우스 대표, 3D스캔으로 '실리콘 의수족' 만드는 이유는?
테크놀로지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인간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이에 비해 휴먼테크놀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효율성보다 강조된다. 실리콘으로 의수‧의족을 생산하는 나만애(愛)실리콘하우스 허준성(46) 대표는 기술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아내 문수지 씨의 오른손이다.
“아내에게 좀 더 예쁜 손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피부 톤이나 색깔, 모양 등을 정상적인 왼손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니 점점 제품이 업그레이드 되더군요.”
공들여 만든 의수에서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이 날 때면 허 대표는 속에서 기쁨의 웃음과 눈물이 교차된다고 한다.
197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준성 대표는 진주기계공고를 거쳐 연암공업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LG생산기술센터에서 일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 뚝딱 만들고 고장 난 것은 뜯어 고치기를 좋아해 ‘판문동 맥가이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오토캐드(AutoCad)를 이용한 기계 설계 및 제작이 취미였던 허 대표는 아예 의수족을 제작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고, 그 덕분에 아내를 만나게 됐다.
허 대표의 아내 문수지 씨는 세 살 때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전남 보성 예당역 근처에 살던 문 씨는 밭일 나간 엄마를 찾아 혼자 기어가다가 기차에 치여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소중한 오른손을 잃고 말았다. 허 대표는 수년전 고객으로 찾아온 문 씨와 사랑에 빠져 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좀 더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의수를 선물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허 대표는 요즘도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2시까지 연구실에서 지내는 날이 허다하다. 의수의 미세한 혈관이나 색깔까지 아내의 왼손과 비슷하게 구현하기 위해 땀을 쏟고 있는 것. 그런 남편을 쳐다보는 아내의 표정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한다.
아내에게 끼워준 의수만큼 잘 만들어야 절단으로 상처받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 허 대표의 믿음이다. 그래서 이 일을 천직으로 삼아 ‘생명을 불어넣는 의수족제작자’라는 자긍심으로 즐겁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Q. 사명이 특이한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사명 속의 ‘나만애’에는 ‘사랑 애(愛)’라는 글자가 들어있습니다. 의수‧의족을 제작하는 사업은 휴먼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드는 제품은 ‘나만을 위한, 나를 사랑하는 의수‧의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수를 예로 들면, 타 업체처럼 금형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이 아닌 자신의 남아있는 손을 그대로 반전하여 반대 편 손과 똑같은 의수를 만들지요. 다른 사람을 위한 손이 아닌 나만을 위한 손이라는 뜻을 사명에 담았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이 분야의 일을 하게 되었나요?
“26년 전인 1993년 현역으로 복무하던 중 대한민국 최초의 UN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로 파병되었습니다. 그때 소말리아 내전으로 사지가 절단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상록수부대에서 설립한 ‘사랑의 학교’에서 배급을 하고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는 폭격과 지뢰로 인해 팔다리가 절단된 사람들이 많았는데, 워낙 후진국이라 의수족은 꿈도 꿀 수 없어 나무 작대기에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다니는 게 예사였지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제 전공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의수족을 잘 만들어 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우연찮게 의수족 제작 일을 오랫동안 하신 고영찬 대표(현 서부산 센텀지점장)를 만나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생소한 분야인지라 처음에는 기술적인 한계를 느껴 포기할까 낙담하던 중 아내(문수지)를 알게 되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일에 매진했지요. 의수족 제작 전문가로 발을 들인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의수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하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개월을 밤새며 연구에 몰입하여 생명을 불어넣은 듯 자연스러운 의수를 만들게 되었지요.”
Q. 기존 제품과의 차별성은?
“의수족 관련 정식 등록된 특허 중 첫 번째 ‘의지제조방법’은 기존의 금형 틀에서 찍어내는 방법을 탈피하여 자기 손과 가장 흡사하게 제조하는 방법이 핵심입니다. 기존의 반투명 피막외피를 없애 탄성이 좋으면서도 얇은 가장자리 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두 번째 ‘실리콘박막필름을 이용한 의지 제작방법’은 더욱 얇은 가장자리 처리를 위해 고안한 방법으로 두께는 약 0.2mm로 제작됩니다. 기존 국산품은 두께가 무려 1mm가 넘는 제품도 있습니다. 두꺼우면 의지을 착용했다는 표시가 너무 많이 나게 되지요. 세 번째 ‘의지 제작용 실리콘 박막 필름 제작방법 및 제작장치’는 그동안 고안한 제작방법과 기술뿐만 아니라 생산설비에 대한 공법을 인정받은 특허입니다.”
Q. 제조 공정에도 기본의 방식과 차이점이 많겠군요.
“기존의 방식은 정해진 틀에서 인체의 주름등 형상을 얇은 막에 전사시켜 그 막을 붙입니다. 하지만 제가 고안한 방법은 정해진 틀에서 생산된 피막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압착 후 그 막을 벗겨낸다는 점이 다릅니다. 기존의 공법에서는 피막으로 사용된 액상실리콘이 붙어 있기 때문에 두께가 두껍고 인위적이며 탄성이 거의 없어 환부를 압박할 수 있으나, 제가 고안해 사용하고 있는 고체 실리콘은 높은 탄성으로 인해 착용감이 우수하고 변색의 염려가 거의 없습니다.”
Q. 의수‧의족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보기에 자연스러워야하고 착용감이 좋아야 합니다. 오른쪽 의수를 만든다면 의뢰자의 왼손과 흡사한 모양(shape)과 색상을 구현하는 데 신경을 씁니다. 게다가 착용감이 편안해야 합니다.”
Q. 의수‧의족에 관한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의수‧의족 제작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실리콘을 다루는 기술은 독일 Otto Bock(오토 복)사이 독보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술 연수를 신청하여 아시아본부인 태국 방콕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의지 제작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선진국인 독일 오토 복의 실리콘하우스 연수는 제가 국내 최초였고, 그 회사로부터 인증(certificate)도 최초로 받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독일 오토 복보다 진화한 방법을 개발하여 당시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퇴직 후 저의 공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Q. 의수‧의족 제작에 3D와 같은 IT 기술을 접목했다지요?
“저는 본래 IT관련 일을 해오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수‧의족 제작에 3D를 접목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지요. 기존의 의수‧의족 제작은 손기술에 의존하는 바가 컸습니다. 그림 솜씨가 좋으면 더 정교한 제품을 만들기에 유리하지요. 독일에서 연수할 때 그림 솜씨가 서툴러 고민이 많았는데 3D를 이용한 공법을 통해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준성 대표는 인체에 가까운 색상, 모양, 주름살, 혈관, 혈색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그 기준을 오른손이 없는 아내 문수지 씨에게 둔다고 했다. 그런 아내에게 선물하고픈 의수가 제작의 기준이 되다보니 제품의 생동감은 점점 높아지고 색상이나 모양이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말한다.
“보시다시피 저의 아내는 어릴 때 사고로 인해 오른손 전체가 없습니다. 항상 곁에서 제 시야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저 손을 어떻게 재생시킬 수 없을까 무수한 고민을 합니다. 의수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간절함이 절실합니다.”
Q. 기존 수작업을 3D 프린터 스캔으로 대체한 업체는 국내에서 처음인가요?
“국내에서는 3D프린터 스캔으로 대체한 업체는 현재 나만애실리콘하우스가 유일한 업체이며, 해외에서도 제가 사용하고 있는 특허의 고유방법은 그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IT강국인 대한민국의 실리콘의수족이 세계 넘버원이 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Q. 의지의 두께를 0.2mm로 구현한다고 했는데 너무 얇으면 잘 찢어지거나 닳지는 않나요?
“저는 두께 0.2mm를 ‘마의 0.2mm’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두께면 손가락 의수를 끼워도 표시가 거의 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금형에서 찍어내는 타사 제품은 두께가 무려 5배 인 1mm가 넘는 제품이 많습니다. 두께 1mm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제품보다 더 잘 찢어집니다. 이것이 기술의 가장 큰 차이점이지요.”
Q. 고객들은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찾아오나요?
“저의 네이버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시는 고객들이 많습니다. 아내의 사연을 듣고 많은 격려와 칭찬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그 분들 덕택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찾아오시는 고객들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네덜란드에서 제작 의뢰를 하신 분이 한 달 넘게 한국 여행을 하면서 기다렸다가 물건을 찾아가시기도 했답니다.”
Q. 현재 영업 실적은 순조로운 편인가요?
“중앙보훈병원, 인천재활공학연구소등에 실리콘롤러설비를 납품하였고 태국의 시라차에도 납품되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소문을 듣고 대구와 부산, 서울 사무소로 문의가 들어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맞춤형 제작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요구에 응하는데 손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Q. 제작은 주로 어디에서 합니까?
“대구와 부산에 전문 수작업(handmade)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실리콘의수와 실리콘의족 그리고 실리콘손가락인 실리콘수지를 제작합니다. 의수족 제작의 대한민국 대표전문가 두 분이 부산공장과 대구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사 대표인 저는 이분들의 기술지원, 신재료 공법 지원 등을 맡고 있지요. 진주 판문동에 있는 나만애의수족연구소에서는 실리콘의수족 생산을 위한 배합기계, 가공기계 등을 주로 직접 설계하고 제작합니다. 3D설계는 주로 연구소에서 맡아서 하며, 설계 후 출력된 출력물을 공장으로 보내 일일이 수작업으로 자연스러운 의수족을 만들고 있습니다. 부산공장은 저를 창업초기부터 지원해주신 고영찬 대표가 운영하며, 대구는 만 26세 의지보조기기사인 송민걸 대표(대구 나만애실리콘하우스 대표)가 청년창업으로 애쓰고 있습니다. 송 대표는 의학‧보건 분야 교수인 아버지의 추천으로 학생시절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고 이 기술을 연마하여 젊은 감각과 따뜻한 가슴으로 채움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태국에 지사를 설립하는 등 현재 동남아 진출을 시작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국내 장애인들을 위해 제작소 확장과 영업망을 더 구축할 예정입니다. 또한 일본, 중국, 유럽까지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국제특허출원을 했습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절단 장애인을 위한 봉사 활동도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내는 평소엔 저의 일을 도우고 주말에는 의료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필리핀 해외의료봉사도 다녀왔습니다.”
Q. 의지를 선택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의지는 무엇보다 잘 맞은 소켓이 중요하며, 정렬이 잘 되어야 합니다. 환자 개개인의 신체에 적합한 부품 선택이 필요하지요. 처음에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품의 사후관리와 의지 보행 훈련 등 재활 팀과의 협업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Q. 의지를 구매할 때 보험 적용 등 혜택은 있나요?
“국가에서는 장애 유형에 따라 내구연한에 준하여 제작비를 일부 지원합니다. 장애 유형에 따라 일부 금액이 지원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부족한 수준입니다. 앞으로 현실적인 수가가 절실합니다.”
Q. 당뇨, 사고로 인한 절단 등 환자의 유형에 따라 의지 제작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나요?
“당뇨로 인한 절단은 합병증으로 인한 절단이므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술 후 회복능력이 떨어져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점입니다. 따라서 재발 관리가 매우 절실합니다. 우리 회사로도 당뇨로 인한 절단 환자들의 문의가 많습니다. 상처 난 부위에 통증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딱딱한 보형물이 아닌 특정부위마다 경도가 다른 실리콘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부를 완전접촉(Total Contect)하면서도 균일하게 체중 분산을 하는 데 유념해야 합니다.”
허준성 대표는 지금의 일이 운명적이라고 말한다.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 파병된 것도 그렇고, 사고로 오른손이 잘린 아내를 만난 것도 그렇고, IT관련 일을 했던 것도 그렇고 모두 다 최상의 의수‧의족 제작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각본처럼 생각된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던 아내 문수지 씨는 마네킹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의수를 착용한 채 고객을 만나면서 늘 신경이 쓰여 많은 업체를 찾아다닌 끝에 나만애실리콘하우스 공장을 찾았고 허 대표가 만든 제품을 보고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아내는 저의 모델입니다. 아내는 평생 기꺼이 모델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인 저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아내처럼 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해 보다 자연스럽고 좋은 제품 개발을 위해 나서겠다는 뜻이지요. 그런 아내가 늘 고맙습니다. 아내는 기차 사고 이후 두 번 태어나 사는 덤의 인생이라며 감사의 마음으로 봉사하며 살겠다고 합니다.”
전자신문인터넷 김국진 객원기자 (kk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