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국내 모든 전자금융사업자는 거래 고객의 주소 수집을 의무로 해야 한다. 정부가 7월부터 시행하는 자금세탁방지법 강화 가이드라인에 주소 수집 의무제가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실효성 없는 전시 행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부과 대상자에 전자금융업자, 대부업자를 포함시키면서 이들 기업에 고객의 주소지 수집 의무화를 내걸었다. 해당 주무 기관인 금융정보분석원(FIU)는 올해 상반기에 전자금융사업자도 고객 주민번호와 신분증 사본 수집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업계 반발로 규제를 완화한 'AML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주민증 수집은 없던 일로 됐지만 고객 확인과 검증을 위해 주소지를 해당 업체에서 수집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신설했다. 자금세탁방지 및 공중협박자금조달금지에 관한 업무 규정에 주소지 확인을 필수 항목으로 규정했다. 주소지를 수집, 저장하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전자상거래 기업은 물론 간편결제, PG사업자 등 모든 기업이 '황당한 규정'이라면서 전시행정의 극치라고 꼬집었다. 주소를 수집해도 실제 주소지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전자금융사업자 관계자는 “물품 배송지가 있는 것도 아닌 핀테크 사업자가 실제 주소지를 수집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해당 고객이 허위 주소를 입력해도 이를 걸러내거나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말 그대로 쓰레기 주소 정보를 이상 거래 등을 잡아내는 정보로 활용하겠다는 조치다.
또 다른 간편결제 기업 대표는 “미국의 경우 카드 배송지 등을 활용한 주소 인증제가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가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급하게 해외 정책을 짜깁기하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핀테크 업계의 주민증 수집 반발로 규제를 완화한 조치를 내놓아야 하고, 그렇다고 아무런 규제 장치 없이 AML 규정을 내놓을 수 없다 보니 어정쩡한 '주소제 수집'이 불거져 나온 모양새다. 전자상거래 기업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이 물품 배송에 쓰이는 주소를 실 주소지로 저장, AML에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해당 고객이 본인 거주 주소를 입력하지 않고 타인 주소나 부모 주소지 등을 입력해도 역시 걸러낼 방법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확인도 되지 않는 주소지를 수집해서 몇 년 동안 저장하고, 이를 AML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정부 조치에 정면 반발했다. 특히 배송 등이 없는 대형 간편결제 사업자는 난감한 상황이다. 더욱이 2~3년마다 고객 주소지를 다시 확인하는 재이행주기 조치도 업체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