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돌파,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달성했다. 석유회사 아람코를 제치고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자산으로 등극한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를 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비트코인을 비롯 가상자산이 금융시장 변방에서 중심으로 다가오는 양상이다.
이런 성장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한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주요 금융기관의 투자가 급증했고, 인플레이션의 헷지 수단과 가치 저장 도구로서 역할이 부각되며 해외 금융 시장 신뢰도가 높아졌다. 4월 비트코인 반감기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거래 속도와 비용, 결제 등 확장성을 위한 기술 발전도 꾸준히 이어지면서 가격 상승의 동력이 되고 있다.
트럼프의 재등장은 가상자산 시장에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가상자산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고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디지털 경제에서 미국의 선도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도 주목받고 있다. USDT((Tether)와 USDC(USD Coin)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기반으로 발행되며, 미국 국채를 준비금으로 활용해 달러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움직임에 주요 국가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유지하며 CBDC를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 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일각에선 중국이 기존의 가상자산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 활성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유럽연합은 MiCA 규제 체계를 정비하고 디지털 유로화를 개발하며 시장 주도권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도 가상자산 완화 등 진흥 정책을 추진하며 아시아권 디지털 금융 허브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반면,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은 규제 중심의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형 토큰(STO) 발행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며, ICO와 스테이블코인 등은 법적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시행 중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투자자 보호에 기여했지만, 산업 진흥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미흡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유망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거나 신사업을 주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MZ세대 등 적극적인 소비자층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한 채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젠 국내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통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ICO와 상장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법인과 기관투자자의 시장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등 신규 디지털자산의 발행·유통 체계를 정비하는 포괄 입법인 디지털자산법이 더해진다면, 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여기에 가상자산 과세 유예 연장에 더해 세제 혜택과 인프라 투자 지원 등 시장 친화적 정책으로 산업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아울러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공정 경쟁을 통해 소수 거래소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개선하되,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자율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 산업, 기술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된 현재의 디지털자산 정책 체계로는 효율적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최근 미국이 디지털자산과 인공지능의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는 등 주요국의 전담 체계 강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도 전문화된 독립 조직 구성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송민택 공학박사 pascal@apthefin.com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