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던 홍역이 부활했다. 세계 곳곳에서 홍역이 확산되는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홍역 발생건수는 22만9000건으로 전년 대비 두 배를 넘겼다. 그러나 이는 보고 수치로, 실제 발병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올해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WHO 잠정 집계에서 지난 1분기에만 홍역이 11만2163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뉴욕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발령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염이 이어지고 있다.
홍역은 본래 치명적인 질병이다. 지금도 몹시 애를 먹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으로 '홍역을 치르다'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다.
홍역 바이러스는 눈, 코, 입을 통해 폐로 전달돼 체내 면역체계를 파괴한다. 우선 면역 체계 최전선인 대식세포를 점령해 바이러스 생산공장으로 바꾸고, 이를 반복한다. 면역체계 지휘관 역할을 하는 수지상세포까지 감염시켜 면역체계 자체를 무력화한다.
이는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합병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대부분 홍역환자 사망자가 폐렴으로 목숨을 잃는다. 사망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실명, 난청, 뇌 손상과 같은 깊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환자가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염자를 양산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이런 심각한 병이지만 한동안은 기세가 잦아들었다. 1968년 홍역과 볼거리, 풍진 등을 막는 'MMR 백신'이 개발되고 점차 확산되면서 '한물간 질병'으로 여겨졌다. 다른 예방접종과 마찬가지로 면역 T세포에 항원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백신으로 발병을 막을 수 있다.
예방접종 확대는 사회 '집단면역' 형성으로 이어졌다. 집단면역은 집단 내 대부분이 면역을 가진 상태를 뜻한다. 이 경우 감염병 전파가 느려지거나 쉽게 멈춘다. 혹시 면역이 없는 개체가 있더라도 이 개체로 질병이 전파될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이 결과로 지난 2016년에는 WHO와 팬아메리카보건기구(PAHO)가 캐나다에서 칠레까지 아우르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홍역이 소멸됐다고 공식 발표하기까지 이르렀다. 카리싸 에티엥 PAHO 사무총장은 그 해 11월 27일 “오늘 홍역에 작별을 고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6년 '홍역 퇴치 국가'를 선언했고, WHO 인증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최근 홍역 확산을 이상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백신 개발과 보급으로 잦아들었던 홍역 전염이 왜 다시 급증하게 됐을까.
한동안 퍼진 '백신 괴담'이 주된 원인으로 주목받는다. 괴담 탓에 스스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집단면역에 구멍이 생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영국 의사인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1998년 발표한 논문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논문은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논문은 취소됐지만 지금까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되고 있다. MMR 백신 접종자가 오히려 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지만 이 사실은 쉽게 묻혔다.
이슬람권에서는 백신이 돼지로부터 추출한 물질을 담고 있다는 그릇된 소문이 퍼지면서 접종 거부가 이어졌다. 이슬람 율법은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다.
국내에서도 한 때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면 백신 접종을 피해야 한다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민간요법이 성행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