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원인 규명보다 사고 수습·설비운영 기준 마련 시급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 대응이 ESS 산업을 지킬 수 있는 '골든타임'을 이미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사고 원인 규명에만 급급해 하지 말고 ESS 설비 설계·공사·운영 기준과 함께 배터리 시스템 안전 인증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집중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단편적 요인은 이미 알려져 있는데 책임 당국은 사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가동 중지 기간이 계속되면서 산업이 고사될 위기다”며 “'기설치된 ESS'와 '신설 ESS'에 따라 각기 다른 대책을 마련하고 기설치된 ESS는 '책임있는 조기 가동'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조기 가동'으로 설비 업체들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교수가 제시한 조기 가동 조건은 SOC(충전잔량)를 획기적으로 낮춰 재가동하는 등 기존과 다른 운전 조건을 제시해야 하고 배터리 단셀,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전력변환장치(PCS)의 불량 부품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 교수는 또 “ESS용 배터리 단셀(단위전지) 인증기준을 강화하고 교차 인증과 'HALT(가속수명테스트)'를 배터리 단셀과 BMS·PCS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정부는 ESS용 배터리 기술 개발보다는 ESS 관련 인증평가 개발로 시장 안정화부터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조사위원회에 대한 비판도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EPC업체 대표는 “사고를 이론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향후 파장만을 우려한 나머지 설비 가동을 중지시킨 게 지금까지 조사위 역할 전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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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주파수조정(FR)용 ESS로 주목을 받았던 48MW급 경산변전소. 이 변전소의 ESS설비는 2018년 5월 화재가 발생했다.

MWh급 ESS 설비는 수 만개 셀로 구성되며 하나의 셀에서 열폭주가 발생하면 집적된 구조의 배터리시스템으로 화재가 쉽게 확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도 대책 마련보다 가동 중지에만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는 지금 최상의 환경조건에서 임의로 ESS에 화재를 발생시켜 그 과정에서 원인을 찾겠다는 비현실적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열폭주 현상에 대한 안전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EPC 업체 이도의 채재훈 상무는 “배터리 셀이 직접적 사고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사태에서 배터리시스템 내성이 약해 열폭주 현상을 이겨내지 못한 건 사실이다”며 “이번 기회에 배터리 시스템 등 ESS 설비 전반의 공사·설계·운영 가이드를 만들고 저가 수주로 인한 저질 시공을 막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016년과 2017년 국내 ESS 발주물량이 세계 1위일 정도로 우리가 ESS 선진국가인 만큼 세계 최고 수준 가이드라인을 우리 업계가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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