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제품이 독식하던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국산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기업이 보급형 제품부터 세계 최고 수준인 11.74테슬라(T)급 제품까지 상업화 채비를 갖추면서 대형 의료기기 시장 진입을 눈앞에 뒀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비알씨, 삼성전자 등의 국산 MRI 상용화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과 연구용 제품은 사전 판매까지 시작했다.
가천길재단 지분 투자로 2009년에 설립된 비알씨는 약 8년의 연구개발(R&D) 성과를 눈앞에 뒀다. 세계 최초로 개발되고 있는 11.74T MRI 핵심 부품인 마그넷이 오는 5월 국내에 상륙한다. 마그넷은 영상을 얻는 초대형 자석으로, 자동차로 치면 엔진과 같다. 영국 장비업체 마그넥스가 비알씨 연구진과 함께 현지에서 공동 개발했다. 5월 중 배편으로 인천항에 들여와서 송도 브레인밸리 내 가천대 길병원 뇌질환센터에 구축된다.
11.74T 마그넷은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보다 26만배 이상 강력한 초전도 물체다. 현재 병원에서 주로 쓰는 3T MRI보다 화질이 1만배나 높다.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하는 7T 뇌전용 MRI 마그넷도 9월 송도에 들여온다. 7T MRI는 3T 제품과 비교해 화질이 최대 70배나 선명하다. 현재 7T 뇌전용 MRI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유일하게 허가를 받았다. 비알씨는 올 4분기부터 연구용 7T MRI를 공급한다. 가천대 길병원 뇌과학센터에 우선 공급될 것이 유력하다. 현재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MRI 영상을 분석, 판독을 지원하는 기술까지 개발하고 있다.
신영수 비알씨 총괄이사는 “5월과 9월 11.74T와 7T 마그넷이 들어오면 제품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한편 연구용으로 우선 판매하는 마케팅을 시작한다”면서 “7T 제품은 경쟁사 대비 가격, 무게, 크기 등을 30% 이상 줄인 것을 내세워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10년 가까이 MRI 개발에 매달린 삼성전자도 상업화에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자체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의료기기 시장 고부가 가치 제품인 MRI 개발에 매달렸다. 2017년과 2018년에는 팔, 다리를 일부분 찍는 사지촬영용 MRI를 선보였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며, 조만간 국내외 병원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확대한다.
삼성메디슨 관계자는 “그동안 제품 안전성과 성능 검증을 위해 임상시험을 꾸준히 했다”면서 “올해는 국내외 병원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확한 출시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인허가 등 상업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이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국산 의료기기 기업 90% 이상이 연매출 50억원 미만이다. 저가 의료기기 공급에 집중돼 영세한 실정이다. 대당 100억원이 넘는 MRI 등 대형 의료기기는 부가 가치가 높다. 우리나라 강점인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MRI 국산화는 의미가 크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MRI 시장은 GE, 필립스, 지멘스 등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지만 발전된 우리나라의 AI와 반도체 기술을 접목해서 성능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승산이 있다”면서 “중국·동남아·중남미 시장을 겨냥해 해외 진출을 추진한다면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 시장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