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등의 장은 소프트웨어(SW)사업을 발주하는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하는 분리발주 대상 SW를 개별적으로 직접 계약해야 한다.' SW산업 진흥법 제20조 2항의 내용이다. 이른바 'SW분리발주 의무화법'이다.
나라별로 독특한 환경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 있지만 세계에서 우리에게만 있는 독특한 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클라우드 발전법'이다. 클라우드 우선정책이나 올앳클라우드와 같이 진흥 목적이 아니라 클라우드 사용을 금하는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고육책성 법령이다.
영국 G-클라우드 사이트를 보자. 정부가 필요로 하는 모든 SW가 분야와 사업자별로 정리돼 공무원의 SW 직접 구매가 가능, 대면 업무가 필요 없거나 최소화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화됐다. 영국은 선진화된 클라우드 조달 시스템을 기반으로 유럽 내 SW 산업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라우드 선진국으로서 많은 프로젝트와 국가에 영감을 주고, 산업 중흥 모범으로 꼽힌다. 이런 나라에서 'SW 분리발주 의무화법' 의미가 있을까.
클라우드를 지원하는 SW로 개발돼 빌려 쓰는 종량제(PAYGO) 형태이기 때문에 SW 대가는 기업의 영업이익이 된다. 회사 발전과 인력, 생활 수준까지 영향을 미친다. 납품 과정에서 유통비용과 시스템통합(SI) 회사 수익에 누수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잠시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해보자. 만약 당신이 1억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주문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판매자가 2000만원에 판매되는 차를 가져왔을 때 아무 불평 없이 이 차를 이용하겠는가? 그대로 사용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한다. 모 대형 SI 회사는 전체 사업 대금 가운데 SW 가격을 9억원에 받아서 성능 평가를 통과한 뒤 원래 납품하기로 한 제품 대신 2억원대 헐값으로 유사 제품을 납품한다. 수익은 SI 회사 몫이고 헐값에 사들인 제품 성능과 불편함은 공무원 몫이다. 문제는 제품 가동이 잘돼도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대부분의 경우 해당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공무원이 불편을 겪는다. 제 성능을 내는 경우는 이때부터 해당 SW의 덤핑 요구는 당연한 일로 돼 결국 도산에 이르게 된다.
실제 납품 업무에서 분리발주가 시행되지 못하고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절차의 까다로움을 하소연한다. 통합발주는 업무가 편하고 관리와 책임 소재가 단순하다. 공공기관에서 '분리발주' 자체를 시행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SW 분리발주 제외 사유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사업 특성상 하드웨어(HW)와 SW 간 밀접한 연동이 필요' 'SW 커스터마이징 및 최적화 필요' 등이다. 따지고 보면 연동이 필요 없는 SW가 어디 있겠는가. HW 위에서 SW가 가동된다. 조달청과 관련 부처는 공무 편리성 못지않는 절차와 계몽, 분리발주에 대한 인센티브를 기획해야 한다.
대체로 HW는 SW보다 비싸다. 그래서 가치 자체를 SW에 두지 않는다. SI 업체는 수주된 금액에서 최대 수익을 얻기 위해 각 업체와 2차, 3차 협상을 통해 최저가의 최저가를 뽑아낸다. 이 과정에 SW 회사는 개발비는커녕 순수 인건비에 해당하는 맨 먼스(한 달 동안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량)로 평가받는다. 갑자기 솔루션 회사가 인력 공급 업체로 전락한다.
예산을 늘리고 SW 수가를 선진국 이상으로 책정해도 '분리발주'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SW 산업은 더 나아질 수가 없다. 공공정보화는 5억원 이상 사업 가운데 품목별 5000만원 이상 SW와 나라장터 등록제품의 경우 분리발주가 의무화됐다. SW 인력 양성과 중요성, 타 산업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많은 자료와 주장은 SW 최저가 및 SI 하청제로 가치를 상실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SW 분리발주 의무화 준수가 필수다. SW 표준편자 입찰제를 정착시키고, SW 품질평가시험(TTA) 제품 의무·우선 구매를 시행한다. 공공기관의 SW 예산과 실제 지급 실태 관리 제도를 확립한다. 클라우드 기반 SW 개발과 구매 환경 조성 등을 제시한다. SW 수가 산정과 예산 확보, 유지보수 비율 조정 등 다른 어떤 SW 정책보다 우선 확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법이 자꾸 만들어지지 않도록, 'SW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백준 틸론테크놀로지 대표이사 kjun@til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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