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세요?” 베트남 호찌민에서 듣는 한국말도 신기하지만 택시기사는 박항서와 축구 얘기로 신바람이 났다. 비록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에 졌지만 누구도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비난하지 않는다. 기대 이상의 성적도 이유지만 박항서와 축구팀이 일궈 낸 기적이 승리 이상의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박항서 매직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단결된 힘에서 출발한다. 감독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베트남 선수들에게서 개인 생각을 표출하는 행동을 본 기억이 없다. 일본전 실점 이후 '전면 공격'이라는 박항서 감독의 한마디에 선수들은 그라운드의 야생마가 됐다. 거침없이 공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그들을 보며 순교하는 종교인이 연상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때 묻지 않은 선수의 신뢰는 자신들을 자식처럼 챙기고 베트남 축구의 가능성을 믿는 박 감독의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
박항서 매직의 또 다른 비결은 기적을 이루겠다는 확실한 목표다. 체력이 밀리고 기술이 부족해도 목표가 높고 분명하면 기적은 이뤄진다. 병역 혜택을 노리는 단순한 노림수와는 다르다. 카타르에 무력하게 무너진 우리나라 축구팀의 목표 '59년 만의 우승'은 나라의 욕심이지 축구선수의 목표만이 아니다. 오히려 한 게임의 승리보다 한국 축구의 미래에 한 획을 긋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박항서 매직에 불을 지핀 것은 우리나라 붉은 악마를 연상케 하는 베트남 응원단이다. 한 달 월급을 통째로 투자해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달려온 원정응원단은 극히 일부다. 베트남의 거리를 금성홍기와 붉은 셔츠로 뒤덮은 수많은 오토바이를 보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열기를 타고 베트남 축구팀은 앞으로도 수많은 기적을 일궈 내고, 그 기적을 당연으로 승화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최근 2년의 박항서 매직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베트남의 저력을 보여 준 사건의 연속이다.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준우승, 팔렘방 아시안게임 8강, 지난주 아시안컵 8강 진출은 기적이라기보다 박 감독이 베트남 국민과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선수, 감독으로서 스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베트남의 새로운 역사를 써 가고 있는 박 감독은 그들에게 한국이 준 선물이지만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각성제다.
대한민국의 4차 산업혁명도 박항서 매직을 배워야 한다. 군림하지 않는 지도자,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단합을 일궈 내는 지도력, 신뢰와 행동으로 단합하는 선수들, 동일한 목표를 응원하는 민중은 4차 산업혁명 성공의 필수 요소다. 특히 내디디는 걸음에 다리걸기식의 반발은 지양해야 한다. 반대와 저항이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긴 하지만 지나치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박항서 매직과 같은 기적이 절실한 때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겸손하게 배우는 것이 지혜다. 자신의 권력과 업적을 자랑하는 지도자는 국민의 염원을 읽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박 감독이 자신을 포기하고 베트남 축구를 얻은 희생으로 오늘의 기적을 이뤄 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작금의 정치권 싸움과 고집스런 논쟁의 중심에 '자신'이 춤추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2002년 월드컵을 되새김질하면서 우리의 저력을 부활시킬 지도자와 그를 중심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