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 업체 A사는 최근 공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거래처인 LG전자의 스마트폰 판매가 부진하면서 더 이상 공장을 운영할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LG이노텍은 인쇄회로기판(PCB)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LG그룹 내 대표 전자부품 업체지만 이 회사 역시 LG전자 스마트폰 판매 저조 여파로 설비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스마트폰 부품 업계가 한파를 맞고 있다. 성장 동력인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를 맞으면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던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 실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그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한때 삼성과 자웅을 겨루던 LG전자 자체도 스마트폰 사업에서 1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규모가 작은 국내 부품 업체가 겪을 어려움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LG보다 좀 낫겠지만 삼성전자 쪽 사정도 썩 좋은 건 아니다. 스마트폰 전체 시장은 정체된 반면에 경쟁은 가열돼 삼성전자도 고전하고 있다. 여전히 세계 1등을 기록하고 있지만 이른바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에 시장을 뺏기고 있다. 삼성은 점유율 하락 만회와 함께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산 부품 채택을 늘리고 있다. 부품 협력사들은 삼성의 이런 움직임에 압박을 느끼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 부품 산업의 위기는 완제품인 이른바 세트 사업에도 좋을 리 없다. 부품 생태계가 튼튼해야 좋은 완제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제안하고 싶은 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줄세우기와 편가르기를 허물자는 것이다. 우리 산업계에는 언제부터인가 삼성 협력사, LG 협력사 등으로 대열이 나뉘었다. 무리에 들지 않으면 외면 받고, 이탈하면 곧 적이 된다. 모두 알면서도 꺼내 놓지 않는 일그러진 단면이다. 내 편이 아니라도 좋은 부품이 있다면 사용하는 것이 구매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대기업 스스로도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2016년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삼성전자는 문제가 된 삼성SDI 배터리 대신 중국 ATL 배터리로 전량 교체했다. 국내 LG화학이 있음에도 바다 건너 ATL이 최대 수혜자가 됐다. LG전자는 구매력이 떨어져 퀄컴에서 AP를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면서 삼성전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구매하지 않는다. 중견·중소 부품 업계로 눈을 돌리면 앞뒤가 더 맞지 않는 일은 부지기수다. 삼성은 중국 부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삼성 협력사는 LG, 화웨이 등에 부품을 팔아선 안 된다.
편가르기와 줄세우기가 경쟁력을 갉아 먹는 사례를 무수히 봐 왔다. 중소 협력사는 글로벌 기업이 수두룩한 한국에서 반쪽짜리 내수 기업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의 기회를 놓친 사이 이젠 전방산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낡은 관행과 악습은 버려야 한다. 중국과 같은 경쟁국·경쟁사가 부담되면 적어도 국내 기업 간에 놓인 장벽은 허물어서 국내 부품 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중국은 똘똘 뭉쳐 스마트폰 완제품뿐만 아니라 부품에서 오필름, 써니옵티컬 같은 세계 기업을 길러 냈다. 변화할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침몰할 뿐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