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눈과 귀를 의심했다. 가짜 뉴스가 그럴 듯하게 번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설마'했던 의심은 공포로 변했다.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고, 포고령이 나오고서다.
A4 용지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한, 578자로 쓰인 내용은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국회의 활동을 금지한다는 반헌법적인 내용은 물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대목이 특히 그랬다. 언론학 수업에서나 듣던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부활이었기 때문이다.
계엄사의 통제. 통제의 뜻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계염사가 언론을, 즉 기사를 검열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언론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신문과방송〉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1979년 10월 27일 계엄포고 1호가 발표됐다. 대학 언론을 포함한 모든 언론·출판·보도는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의 철저한 사전 검열을 받아야만 했다.
겁만 주기 위한, 선언적이고 형식적인 조치에 그쳤을까. 그렇지 않았다. 검열관들은 '검열관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 수첩에는 '검열지침'이 담겨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북괴 도전의 봉쇄와 국가보위(國家保衛) ▲국민생활의 안정(安定) ▲국민총화로 조국 근대화 발전(發展)을 보도방향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발표문 이외 게재 금지 ▲비상계엄에 관계해 목적을 부당하게 왜곡·비방·선동하는 내용 ▲국민 여론 및 감정을 자극하는 사항 ▲치안 확보에 유해로운 사항 ▲공식 발표하지 않은 일체의 계엄사무 사항 등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언론에 취재도 하지 말고, 받아쓰기만 하라는 것이다.
〈신문과방송〉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1979년 10월 27일부터 계엄이 해제된 1981년 1월 24일까지 총 456일에 걸친 계엄 기간 동안 계엄사 내 검열단에서는 총 27만 7906건에 달하는 기사가 검열됐다. 하루 평균으로는 610여 건이었고, 610여 건의 검열 기사 가운데 60건에 달하는 기사의 전체 또는 일부분이 보도되지 못 했다.
2024년 12월 보도지침의 부활을 목도할 뻔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뒤, 국회에 의해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계엄사령부 검열관과 그들의 수첩, 검열지침이 언론자유의 심장과 같은 언론사 편집국을 침탈했을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국이 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극단적 상상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포고령을 위반하는 사람은 '처벌'도 아닌 '처단'하겠다고 한 2024년의 계엄사령부와 포고령이었다. 구시대적이면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건 과거와 같은 일을 부러워하고 다시 하겠다는 바람의 무의식적 표현이자 발로다.
끔직한 포고령을 이 컬럼에 다시 기록으로 남긴다. 잊지 않기 위함이고, 언론의 자유를 상기하기 위해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중략)...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