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한국형발사체 시범발사를 또 뒤로 미뤘다.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10월 25일로 늦췄다가 기술적인 문제로 다시 무기한 연기했다. 새로운 발사 일정은 원인을 분석해 대응계획을 세운 뒤 다시 정하기로 했다.
한국형발사체 개발은 1조9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 핵심사업이다. 벌써 1조4000억원 이상 사용했다. 그런데, 연이은 시험발사 불발로 신뢰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과연 개발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지축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누리호'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연구개발에 충실하지 못했거나 기획과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술문제 발생으로 연이은 발사연기
연이은 시험발사체 발사 연기는 기술 문제에 따른 것이다. '누리호' 개발사업 순항 여부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더구나 이번 발사 연기는 예정일을 불과 8일 앞둔 시점에 결정됐다. 그만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는 연료와 산화제를 탱크에서 엔진으로 밀어 넣는 '추진제 가압계통'의 압력감소 현상이 문제가 됐다. 연료·산화제 안정 공급은 일정한 압력 유지가 관건이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발사는 물론이고 정상 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발사체를 개발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정부와 항우연은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원인을 분석해 대응계획을 수립하고, 다음주 중에 발사관리위원회를 열어 발사일정을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항우연은 이번에 발견된 문제는 시험발사체 문제라 전체 본 발사 일정에는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반복된 기술문제로 인한 시험발사체 발사 연기를 되돌아 보면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처음 시험발사 일정을 연기한 것은 2016년이었다. 그 해 12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2017년 12월로 잡았던 시험발사 일정을 10개월 늦추기로 했다. 실패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최악의 경우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당초 2018년 12월로 잡았던 시험발사체 발사 일정을 박근혜 정부에서 무리하게 2017년 12월로 1년 당긴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도 일었다. 하지만 발사 일정을 다시 늦췄음에도 기술 문제가 발생했다.
항우연은 당시 '누리호'의 핵심 부품인 75톤급 엔진의 '연소기 불안정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연소기 불안정 연소는 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온도와 압력이 요동치는 현상이다. 추진제 탱크 용접 실패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우주발사체는 나사 하나만 헐거워도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민감하다. 그만큼 치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두차례나 겪은 '나로호' 발사 실패 경험에서도 충분히 학습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 이번에 발생한 기술 문제도 결국은 기술적인 역량의 문제라기 보다는 관리 부실의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시험발사체 일정 연기는 본 발사 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기부는 지난 2월 1차 본 발사 일정을 2019년 12월에서 2021년 2월로 14개월, 2차 본 발사는 2020년 6월에서 2021년 10월로 16개월을 각각 연기했다.
당시 시험발사 연기를 불러온 추진제 탱크 문제가 주요 원인이었다. 추진제 탱크 납품 지연이 문제가 됐고, 결국 기존 제작업체가 사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신규 업체를 선정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했다.
김승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전 항우연 원장)은 “우리나라 우주개발 사업 발전을 위해서는 누리호 사업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며 “이후 성능 개선을 비롯한 추가 사업을 진행해야 해 갈 길이 바쁘다”고 지적했다.
◇본 부분에서도 기술문제 발생...추가 발생 우려
문제는 이후에도 이런 개발과정의 시행착오와 발사일정 연기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확보한 기술이나 극복한 난점 사항도 안심할 수 없다. 이번 시험발사 연기의 원인이었던 추진제 가압계통 압력감소 건은 이미 최종 비행모델(FM) 검증에서 발견한 사항이다. 이전에 제작한 시험발사체 엔지니어링모델(EM)과 인증모델(QM)을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 부분이지만 결국 사달이 났다.
연소기 불안정이나 추진제 탱크 제작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항우연 측은 이들 기술 문제는 극복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철저한 관리가 뒤따르지 못하는 한 언제 또다시 발목을 잡을지 모를 일이다. 이미 인지하고 대처한 원인이 재차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대로는 언제 또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옥호남 항우연 발사체기술개발단장은 “발사체는 수작업으로 조립하다보니 EM·QM에서 확인한 부분이 FM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 생겼다”면서 “면밀한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고 문제점을 예측하고 있지만 향후 문제 발생소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추가 발사연기 여파 커...산업생태계 훼손이 가장 심각
누리호 관련 발사 연기 사태가 또 발생하면 다방면에 문제가 생긴다. 우선 비용이 는다. 누리호 개발 사업 예산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총 1조9572억원을 책정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1조4184억원을 투입했다. 시험발사체 발사를 연기하면 인건비부터 늘어난다. 본 발사가 1년 연기될 때마다 추가되는 인건비는 11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발사체 성능개량 사업을 비롯해 추가 발사체 개발, 소형발사체 개발 등 사업도 순연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우주산업 생태계 확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부는 항우연을 주축으로 추진하고 있는 우주개발 사업을 단계적으로 민간중심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2026~2030년 사이에는 민간 양산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발사체 추가발사와 같은 물량제공으로 산업생태계를 육성·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초기단계부터 삐꺽대기 시작하면 이후 사업은 연쇄적으로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주산업을 준비하는 민간업체에는 자금 압박과 함께 인력 수급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여태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부장은 “발사 연기는 기술을 이전받은 산업 현장에서는 심각한 사태”라며 “사업 공백이 금전적인 어려움이 될 수 있고 애써 구축한 설비나 인력이 무실화되는 일도 생긴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최대한 항우연을 지원하면서 추가 발사 연기가 없도록 내실을 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장인숙 거대공공연구정책과장은 “현장 의견을 세심하게 수렴하고 현실에 맞게 일정을 수립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며 “연구현장의 도전의식을 최대한 살리면서, 발사가 연기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표>한국형발사체누리호 발사계획 변경 추이
<표>한국형발사체 사업 예산 단위 : 억원
<표>한국형발사체 연구 성과 단위 : 건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