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의 유니콘기업 이야기]<35>'금융'이 만든 혁신 대기업 '인포'

유니콘 기업은 대부분 창업자의 혁신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금융의 힘'으로 혁신 대기업이 탄생하기도 한다. 기업 가치 100억~150억달러를 인정받고 있는 기업용 소프트웨어(SW) 회사 인포(Infor)가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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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는 오라클, SAP에 이어 3위의 기업용 SW다. 페라리, 하인네켄 등 9만개 이상 기업 고객과 5800만명 넘는 사용자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회사는 사모펀드사 골든게이트캐피털 임원 짐 샤퍼에 의해 '애자일시스(Agilysis)'로 출발했다. 2002년부터 시작해 현재 200여개 나라에서 사업하고 있다. 골든게이트캐피털은 신규 회사에 기한 없이 투자하는 상록기금으로 장기 투자를 하는 펀드사이다. 샤퍼는 기술회사 투자와 인수합병(M&A), 합병 이후 정상화에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이다.

골든게이트캐피털은 무려 40개가 넘는 기업용 SW 회사를 인수해 종합제품군을 만들었고, 인수 기업 고객까지 확보했다. 2011년 2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인수한 로손소프트웨어, 2015년 약 6800억원으로 인수한 SCM 전문회사 지티넥서스 등을 포함해 매년 3~4개 기업을 인수하면서 급성장했다.

인포는 오라클, SAP와는 차별되게 중견기업 고객에 집중했다. 특정 산업의 특화된 시장을 장악했다. 호텔 예약이나 물류관리, 건설 분야 등 수직적 특화 제품을 폭넓게 갖춰 나갔다. 이는 클라우드 서비스 산업 추세를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회사의 급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 최고경영자(CEO)는 화려한 경력의 찰스 필립스다. 그는 군인인 아버지가 주둔하고 있던 아칸소주 리틀록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2년마다 독일과 미국의 새로운 도시로 자주 이사를 다녔으며, 새로운 학교에서는 언제나 소수 흑인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사람의 마음을 재빨리 읽고 적응하는 재능을 어려서부터 갖추게 해 줬다. 그는 공군 비행사가 되기 위해 미국 공군사관학교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그러나 졸업 후 조종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해군에서 직접 SW를 만드는 실무 장교로 경험을 쌓았다.

이후 필립스는 법과 경영학을 추가로 공부, 정보기술(IT) 분야 경영자가 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군 생활을 좋아하지 않은 부인의 의사에 따라 뉴욕으로 옮겨 최고정보책임자(CIO) 일자리를 찾게 된다. 인터뷰 과정에서 그는 많은 경영자가 IT 폭풍이 닥치고 있는데도 기술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기술 관련 글을 썼다. 그러면서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IT 컨설턴트로 떠올랐다. IT 투자로 고민하는 일반 대기업의 경영자는 물론 기술회사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회사가 가장 먼저 상담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그는 모건스탠리에서 기술 산업 분석가로 크게 성공했다.

이후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의 요청으로 오라클에서 글로벌 영업 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라클의 성장을 위한 맹렬한 M&A의 챔피언 역할을 했다. BEA시스템, 시블시스템과 같은 대형 M&A가 그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그는 불륜 상대이던 여자 친구가 별거하고 있다고 속였다며 옥외 광고판에 폭로하고 오라클의 미래 투자 계획 정보를 잘못 밝히는 등 곤경에 처하면서 오라클을 떠났다. 2010년 인포에 CEO로 와서는 오라클에서 배운 M&A의 재능을 인포에 발휘하고 있다. 그는 오라클에서 손을 맞추던 인재를 영입, 인포를 유니콘 기업으로 만들었다.

인포는 골든게이트캐피털과 서밋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해서 대기업으로 키운, 미국 '금융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 사례다. 우리 사회가 재벌 순환출자에 의한 기업 이외에 대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기업의 지분 투자를 긴 안목으로 진행하는 금융이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선진 금융 부재가 한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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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KAIST 교수 btlee@business.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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