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사회 변화에 맞춰 틀을 짜기보다 기득권 목소리에 따라 운영된다. 20~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과 이름은 바뀌지만, 학과 틀은 대부분 그대로다. 기업은 대학 성적이나 활동만으로는 원하는 인재상을 찾지 못해 '적성검사'라는 것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채용한다. 학생은 대학 전공보다 채용 시험에 힘쓴다.
'인재'에 대한 대학과 기업의 모습이다. 대학과 기업이 동상이몽을 꾼 지 오래다. 대학이 직장인 양성소는 아니지만, 인재와 교육에 대한 시각이 너무 다르다. 대학은 혁신을 주저하고, 기업은 과거 성장기 채용시스템을 고집한다. 학생은 두 시스템을 따라가느라 자기계발에 나서기 어렵다. 각종 자격증이나 점수 따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과 산업 간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임성수 국민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학장은 “교육 분야에서는 기성세대가 '변화'를 만드는 데에 소극적”이라면서 “기업도 채용 시스템 혁신으로 학생이 조금 더 나름의 역량을 드러내고 싶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회에 진출해서 자신만의 경력 개발 로드맵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 대학이 움직여야
대학은 4차 산업혁명과 학력 인구 감소로 구조조정을 앞둔다. 그동안 기득권으로 기존 학과 체계를 흔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대학이 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은 ICT를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이 무궁무진하게 융합되는 시대다. 아무도 변화상을 예측하기 힘든 만큼 특정 기술보다는 변화에 대응하고 혁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 대학으로 꼽히는 애리조나주립대는 2002년부터 기존 69개 학과를 통폐합하고 16개 단과대를 신설했다. 학제가 완전히 바뀌었다. 몇 개 학과를 합친 정도가 아니라 미래에 대응해야 할 현안을 중심으로 학과를 만들었다. 천문학과·지구과학과 등 기존 학과를 합쳐 지구·우주탐사 단과대학을 신설했다. 미래 수요가 예상되는 우주 탐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다. 이 대학은 미래 수요에 따라 새로 단과대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로 거버넌스를 바꿨다.
국내서도 프라임(PRIME)등 대규모 사업을 통해 구조조정을 시도했으나 잡음만 낳았다. 사회 변화에 따른 학제 개편이라기보다는 수요가 줄어드는 학과 정원 감축이 목적이었다. 대규모 사업 편중으로 특혜 시비까지 일었다. 융합 전공이나 융합 학부가 신설된 대학은 여럿 있지만, 기본적인 학과 체계는 공고했다.
대학 커리큘럼은 산업계가 필요하는 내용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데다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갖추기 힘든 중소기업 불만이 높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대학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융합형 인재를 양성해 기업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이를 위해 혁신을 추진할 대학 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애리조나주립대 역시 마이클 크로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 가능했다.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을 설득하고 변화를 이끌었다.
◇기업도 인재교육·채용 시스템 혁신해야
국내 대다수 대기업 공채 시스템은 과거 성장시대 채용시스템을 유지한다. 시험과 면접을 통해 기업이 정한 기준에 들어가는 인재를 대규모로 채용하는 형태다.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다보니, 취업경쟁이 심화될수록 학생은 자기계발보다는 기업이 원하는 스펙 쌓기에 바쁘다. 대입 시험을 치르듯 적성검사 시험을 준비하고 자기소개서를 채울 자격증을 따는 것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는 길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시험에서 몇 점 더 높은 인재는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지만, 이런 형태 채용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인재를 찾아내기 힘들다.
산학협력으로 새로운 인재상을 창출하고 대학이 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지역 기업은 인근 대학과 협력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기업이 재교육을 통해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재교육이 필수지만, 재교육에 혜택을 주는 기업은 많지 않다. 고졸 출신이라도 입사한 후 재교육을 통해 더 많은 능력을 확보했다면 걸맞는 인센티브와 임금을 줘야 하지만, 채용 시점을 기준으로 유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구직 시험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까다로운 채용시험이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길도 아니다.
일·학습 병행제, 직업 능력 개발 훈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이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재교육 후 그에 대한 유연한 보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생학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교육 후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문화의 변화”라면서 “사회 변화에 맞춰 기업도 인력 관리와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보경 정책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