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본점 소재지가 있는 플렌티는 손정의 회장이 결성한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 구글 창업자 에릭 슈미츠, 아마존 제프 베조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화제를 모은 기업이다.
이 회사 사업 영역은 정보기술(IT)도, 바이오도, 나노 분야도 아닌 농업이다. 첨단 생물학과 IT(조명, 센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 등)를 융합해 실내 농장을 구축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기존 대비 토지 사용량과 물 사용량을 99%나 줄이면서 재래식 농장 수확량의 350배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자랑한다.
플렌티 슬로건은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빠르게, 월마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 기술을 활용하면 세계 곳곳에서 아주 작은 토지와 물로 질 좋은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어그테크, 글로벌 투자 확대
플렌티와 같은 회사를 산업계에선 어그테크(Agtech) 기업이라 부른다. 어그테크는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합성어다. 어그테크 산업은 농업을 위한 생물공학, 정밀농업, 대체식품, 식품 전자상거래 기술 등을 포함한다.
최근 어그테크가 뜨는 이유는 전 세계 인구 증대와 이에 따른 식량 및 물 부족 우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은 어그테크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 부족 현상 해결, 식량 자급 등을 슬로건으로 삼는 어그테크는 뜬구름 산업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 분야로 돈이 쏠리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그테크 전문 투자 리서치 회사인 어그펀더는 어그테크 관련 스타트업이 2012년부터 5년간 120억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집계했다. 2016년에는 어그테크 분야 투자 규모가 32억달러(약 3조5000억원)였다. 2011~2012년만 해도 매해 이 분야 연간 투자액은 5억달러 수준에 그쳤었다. 5년 만에 6배 이상 확대된 것. 식품 전자상거래 분야에선 2016년 한 해에만 16억5000만달러가 투자돼 전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어그테크 산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프랑스, 인도, 캐나다, 이스라엘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구글, 아마존 외에도 퀄컴,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미국 IT 기업도 어그테크 기업에 투자를 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농작물 생산성 확대
어그테크 스타트업 중에서는 농업 생산성 향상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많다. 앞서 소개한 플렌티가 LED 조명, 마이크로 센서, 대용량 데이터 처리로 수확량을 늘리는 기술을 보유했다면,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본사가 있는 프로스페라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 농작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내세워 퀄컴, 시스코 등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프로스페라는 인공위성 이미지와 무인항공 사진, 토양 센서 및 날씨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학습해 농민에게 다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회사가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는 기술은 분석 결과물을 통해 농작물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수확량까지 계산해주기 때문에 농민이 적절한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다.
프랑스 어그리쿨은 농약, 유전자변형(GMO)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컨테이너 안에서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농식품을 재배하는 각종 기술을 보유했다. 어그리쿨은 기존 농지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 보다 생산성이 120배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사는 1차 생산 품목으로 딸기를 생산 중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가 있는 바우워리 파밍은 GMO를 사용하지 않은 품종으로 실내에서 LED 조명과 아주 적은 양의 물로 케일, 상추, 바질 등 유기농 야채를 재배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뉴욕 지역 일부 매장에서 바우워리 파밍이 생산한 야채를 구매할 수 있다. '신선한 야채'를 누구나 쉽게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사가 내세우는 강점이다.
전통 생물공학 기술을 보유한 기업도 적지 않다. 미국 워싱턴주 벼리언 소재 파이텔리전스는 사과, 체리, 복숭아, 배, 포도, 각종 열매 과일 품종을 개발하는 회사다. 독자 재배 프로세스인 '멀티PH' 기술을 통해 적은 물과 빛 에너지로도 5배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월섬에 위치한 아케소 바이오메디칼은 영국 노팅엄대학교(University of Nottingham University)가 발견한 광대역 스펙트럼의 철 복합 화학(Fe3C) 기술을 활용해 세균 감염 치료 솔루션을 개발하는 식품 안전 회사다. 돼지, 닭, 소에 투여하면 건강이 개선되고 각종 세균의 감염율을 줄일 수 있다. 매년 미국에선 생물 세균으로 인한 질환이 약 320만건에 이르고 이를 치료하는 비용은 9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아케소 바이오메디칼은 자사 솔루션으로 이 같은 비용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크롭 사이언스는 텍사스대학교 식물 과학 연구 결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탄생한 회사다. 작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피라맥스(PYRAMAX)' 기술을 보유했다. 이 기술은 식물에 널리 존재하는 아피라제(Apyrase)를 조절함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농업에 첨단 IT 적용
미국 케레스 이미징은 항공 사진과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적용해 농작물 영양상태, 수분 상태를 모니터링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필요한 시간에 모바일 앱으로 예약하면 비행기가 떠서 사진을 찍고, 분석 데이터를 농민에게 제공한다. 넓은 농지를 관리할 때 효과적이며 물 사용량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스라엘 타라니스 역시 비슷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영상 촬영,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을 통해 농작물 상태를 정확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농업 정보 인텔리전스 플랫폼이 이 회사 주력 상품이다. 인공위성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이스라엘의 비전 기술이 집약됐다.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적절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대규모 농장 데이터를 제공 분석해 농업 활동 관리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농업 모니터링 분야 회사가 많다. 캐나다 이코에이션 이노베이티브 솔루션즈는 작물 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해충, 질병, 영양 결핍 상태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식물의 상태 신호를 수집하고 AI 소프트웨어 시스템으로 이 같은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데스크톱PC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모니터링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다.
호주에 본사가 있는 더 일드는 센서와 하드웨어, 고급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제공해 농민이 보다 정확한 정보에 입각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날씨로 인한 위험성을 줄이는 기술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 켄터키주에 위치한 스마트팜은 대규모 무선 모니터링 및 제어 시스템을 제공해 농부들에게 농지의 토양, 작물 및 장비 상태에 관한 실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수확량을 증가시키면서 에너지, 비료, 노동 및 유지 보수 비용을 줄여주는 것이 이 회사가 제공하는 솔루션의 특장점이다.
미국 알에이블은 독자 현장 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작물 성장, 수확량 산출, 품질에 관한 실시간 모니터링 및 예측, 분석 기술을 제공한다.
농업 전자상거래는 최근 어그테크 분야에서 가장 뜨는 영역이다. 미국 마이리아드 모바일은 농작물 구매 계약, 입찰, 운송 등과 관련한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솔루션 기업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부쉘이 있다. 부쉘은 iOS, 안드로이드 등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해 농작물 재배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준다. 우버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O2O 서비스다. 중간 유통 단계를 생략해 농작물 가격을 내리는 것이 목표다.
미국 풀 하베스트는 잉여 농산물과 불완전한 농산물을 필요한 소매업자에게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을 보유했다. 결과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농부에게 추가 수입을 제공한다. 풀 하베스트는 자사 솔루션이 널리 보급될수록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의 팜리드는 현금 식품 거래 플랫폼을 보유했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이 플랫폼을 통해 거래 협상 및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판매 등록과 거래 협상은 100% 무료로 이뤄지고, 거래가 완료됐을 때 비용을 지불하는 모델을 채용했다.
임지아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발간한 '농업의 미래, 어그테크 스타트업' 보고서를 통해 “진입장벽이 높고 참여자 역시 큰 변화가 없었던 농업에 새로운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매우 역동적인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어그테크 스타트업은 장기적으로 몬산토, 바이엘, 존디어, 카길 등 거대 농업 기업이 만들어낸 철옹성 같은 게임 구조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표. 2016년 어그테크 분야 투자 비중(자료 어그펀더)
음식 전자상거래40%
생물공학22%
농장 매니지먼트 SW, 센싱 IoT11%
신개념 농장 시스템8%
서플라이체인 기술6%
바이오에너지&재료4%
혁신형 음식3%
로봇3%
기타3%
표. 글로벌 어그테크 투자 투이(자료 어그펀더)
20104억달러
20115억달러
20125억달러
20139억달러
201424억달러
201546억달러
201632억달러
201743억달러(추정)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