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3>탁월풍을 거슬러

탁월풍(卓越風). 어느 지역에서 어떤 시기나 계절에 따라 항상 특정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일컫는다. 무역풍, 편서풍, 극동풍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실상 무역풍(Trade wind)도 '한쪽으로 부는 바람'이란 뜻이다. 중세시대 트레이드(Trade)란 단어는 '트랙(Track)'이나 '패스(Path)'의 의미로 사용됐다. 무역풍이란 이름은 세월이 만든 오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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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옛사람들은 이런 바람을 이용해 항해했다. 맞바람이 불어 항해를 계속할 수 없다면 기꺼이 바람을 거슬러 갔다. 바람을 향해 돛을 펼쳐서 45도로 기수를 잡으면 마치 비행기가 양력으로 날아오르듯 바람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곧장 목적지를 향할 수는 없었지만 지그재그로 바람을 거슬러 항해할 수 있었다.

'사이언스 비즈니스' 저자로 유명한 게리 피사노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사뭇 당황스러운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글로벌 기업조차 혁신을 오해하고 있었다. 문제 핵심은 다른 기업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식이었다.

혁신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것은 유행에 뒤처질 수 없는 탓에 선택한 것이기 일쑤였다. 크라우드소싱이 유행할 때는 사내에 이런저런 문제를 풀 아이디어를 내면 보상하겠다는 공고를 내건다. 코크리에이션이 유행할 때는 고객과 협력해서 독창성이 발휘된 독특한 기능 제품을 설계하겠다며 지원자를 모집,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또 루틴 혁신은 최고경영자(CEO) 사이에 인기 없는 항목이었다. 많은 CEO가 이것을 근시안으로 치부하거나 잘 봐줘도 현실안주형 경영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명확한 연구개발(R&D) 전략이나 포트폴리오가 부재했다. 시장 점유율이 조금만 떨어질 것 같으면 안달하는 마케팅 부서에 뭐라도 신제품을 안겨야 했다. 가격 경쟁을 하면서도 마진을 맞추자니 어떻게든 공정에서 비용을 아껴야 했다. 글로벌 기업조차 R&D 태반이 이렇게 시작돼 끝나고 있었다.

루틴 혁신도 실상은 이렇게 홀대받을 것이 아니다. 인텔이 1985년 i3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내놓은 후 i486, i586, i686으로 개량하면서 무려 2000억달러 영업이익을 거둔 것도 실상 이것의 결과다. 애플의 맥, 아이폰, 아이패드나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루틴이란 하던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한 판의 바둑을 패착과 실착을 짚어 가며 다시 놓는 복기 과정과 같다. 결국 루틴을 '판에 박힌 일'로 잘못 해석한 탓인 셈이다. 루틴의 바른 번역은 '반복'이 아니라 '복기'여야 한다.

유행을 따라 시작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단지 지속성이 없고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끈기도, 무언가를 남기겠다는 의지도 유행이 지나갈 때쯤 함께 날려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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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장자에는 '대붕역풍비(大鵬逆風飛) 생어역수영(生魚逆水泳)'이란 구절이 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는 뜻이다.

피사노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실은 칼럼 한 구절에 '혁신은 탁월풍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써 둔다. 어찌 보면 유행을 좇아 움직일 경우 긴 항해 끝에 우리가 닿을 곳은 이름 모를 외진 항구거나 망망대해일 수도 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혁신이 탁월풍을 거슬러 가는 것이라면 어쩌면 이 바람 센 곳에 혁신 빈자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당신은 바람 탁한 이곳이 어딘지 아는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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