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년 창간기획Ⅲ]<3>투자 불확실성 규제 혁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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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상의 회장이 된 지 4년이 넘었는데, 40차례 가깝게 규제개혁 과제를 건의했다. 일부 해결된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이제는 과제 발굴보다는 해결방안에 치중할 때다.”(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정부가 혁신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규제개혁은 혁신성장 핵심 중 하나다. 정부가 노력했지만 미흡한 게 사실이고, 빠른 시간 내 시장과 기업이 느낄 수 있도록 규제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6월 간담회에서 나눈 대화로, 규제개혁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계와 기업은 끊임없이 규제개혁을 요구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매번 규제개혁을 약속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면 크게 개선된 것을 찾기 어렵다.

◇'붉은 깃발', 이제는 뽑아야

19세기 영국 '붉은 깃발법'에서 유래한 붉은 깃발은 규제개혁의 상징처럼 회자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새로운 동력기관을 갖춘 신산업 자동차로부터 마차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이 자동차 앞에 서서 붉은 깃발을 흔들도록 했다. 자동차를 마차보다 느린 속도로 운행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황당한 규제지만, 당시 영국에선 실제로 시행됐다. 비단 붉은 깃발법 뿐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법과 제도가 현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행되는 각종 법과 규제를 미래에 돌아보면 상당수는 불합리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차량공유, 블록체인, 원격의료, 드론 등 수많은 산업이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신산업 분야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규제를 풀고,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기업과 재계는 끊임없이 규제 해소를 요청한다. 그럼에도 진전이 없는 것은 정부의 실행력이 약한 것도 이유지만,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한 저항도 주요 원인이다. 과거 붉은 깃발법에서 마차 산업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 속도를 규제한 것과 마찬가지다. 차량공유 서비스는 택시사업자 기득권에 가로막혔고, 원격의료도 기존 의료계 반발에 막혀 진전이 더디다. 콜버스 역시 기존 운송사업자 기득권 앞에서 길을 잃었다.

기득권을 돌파하려면 강력한 실행력과 함께 근본적인 규제 혁신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포지티브 규제' 방식을 벗어나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우선 적용하고, 사후에 평가해야 신산업을 빠르게 시도할 수 있다.

◇기업 투자 확대, 경제 활력 '마중물'

기업이 신산업에 뛰어들면 투자가 일어난다. 기존에 없던 신산업을 시작하기 위해 인프라, 인력, 자본 등의 투입하는 과정에서 경제가 활성화된다. 유망 신산업이 등장하고, 여기에 여러 기업이 투자하면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

하지만 신산업을 앞에 두고도 규제개혁 요청만 반복하는 상황은 경제에 부담이다. 기업이 신산업에 뛰어들려고 해도 규제라는 걸림돌이 있으면 투자를 망설인다.

안타깝게도 최근까지 우리 경제는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기존 사업에만 치중하는 구조였다. 신산업에 도전하려 해도 규제라는 벽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 모두 인지하고 있다. 이에 변화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정부가 적극적인 규제 개혁 의지를 밝혔고, 이에 화답해 기업도 투자를 약속했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기업에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에 나서달라고 요청하자, 기업은 수백조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창출될 일자리도 15만개가 넘을 전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말 LG그룹을 시작으로 SK, 현대차, 신세계, 삼성 등 주요 그룹과 연이어 간담회를 갖고,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기업에는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협력사와의 상생 등을 요청했다. 정부 요청에 기업도 대규모 투자 계획과 일자리 창출 계획을 내놓았다. LG, SK, 현대차, 신세계, 삼성이 발표한 투자 금액만 311조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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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를 방문해 현장 소통 간담회를 가졌다.

◇투자 이끄는 규제 개선 서둘러야

현재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가 높다. 지표상으로는 상반기 수출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 수출 중 22.5%를 반도체가 차지할 정도로 편중이 심하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은 부진하다는 의미다.

재계에서도 '반도체 착시'를 걷어내야 경제 위기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 주력산업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경제를 이끄는 반도체 경기가 꺾이기라도 하면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서둘러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지난해 말부터 주요 그룹이 밝힌 대규모 투자 계획이 실행되면 경제 활력을 높이고,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 이를 위한 필요 조건은 정부가 약속한 규제개혁이다. 규제를 해소해 투자 불확실성을 줄여야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이달 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법안을 만들어주고 경쟁력을 약화시키거나 새로운 일에 착수하는 것을 주저시키거나 제한하는 것은 들어내달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도 규제개혁에 뜻을 같이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올해 말까지 우선 순위가 높은 규제를 꼭 해결해 좋은 성과가 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해찬 대표도 “정부와 당도 필요한 규제와 필요없는 규제, 특히 과거로부터 오는 관행이나 필요없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기업, 정부, 국회까지 모두가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만큼 이제 과감한 실행을 통해 실효성을 확보할 때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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