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초고도 디지털 시대, 교육 혁명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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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철 KAIST 교수<전자신문DB>

아득한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무작정 시장을 따라간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장판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본 것 같다. 일단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떻게든 좀 더 깎아 보려는 어머니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상인의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가격 흥정이 잘 안 되면 돌아서는 어머니, 뛰쳐나오며 치맛자락을 붙잡는 상인 아줌마. 결국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은 장바구니에 넣어졌다.

전통시장은 시끄러워서 좋았다. 서로 떨이라고 소리치며 사람의 관심을 끌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읍소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람은 좌판에 펼쳐진 상품 더미에서 좀 더 좋은 물건을 찾아보려고 서로 밀치며 경쟁하기도 한다. 어쩌다 구미에 맞는 물건을 찾으면 요즘 말로 '득템'이다.

이러한 전통시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골목상권의 실종이다. 대형 마트에서도 간혹 전통시장식 호객과 상품 홍보가 이뤄지고 있지만 어릴 때 전통시장에서 본 세상 살아가는 사람 모습 찾기란 쉽지 않다. 가격은 모두 정찰제고, 원하는 물건 위치는 컴퓨터 조회나 스마트앱을 통해 알 수 있다. 바코드 계산대 앞에선 카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마저 사라질 것 같다. 전자상거래, 온라인쇼핑으로 주문한 이튿날 바로 집까지 배달해 주는 편리한 세상이다. 배달원과 어색한 문 앞 카드 계산도 곧 자동배달 로봇으로 대체될 것 같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고객 주문 패턴이 예측되는 것이 요즘 아마존에서 이뤄지는 상품 배송 방식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로봇, 인공지능(AI)으로 직접 연결되는 자동화된 세상이 다가온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가져올 혁신 미래가 유토피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디지털화 속에서 중소기업 경쟁력은 점차 상실되고, 소상공인이 쓰러지고, 청년 일자리가 급속도로 줄어든다는 경제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빈부 격차가 심화돼 더욱 양극화된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아들의 손에 게임을 말리던 어머니가 살해되는 끔찍한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 인간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무언가 잘못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우리가 추구한 디지털화 된 세상이 편리하고 살기 좋은 것인지 새삼 의문이 든다.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인간미 넘치고 훈훈하던 그때 그 시절, 아날로그 세상이 더 좋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스마트폰이 없던 젊은 시절 대학 신문을 보고, 약속 장소를 정해서 연애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린 시절 집에 백색전화 놓았다고 자랑하던 아버지 모습도 떠오른다. TV를 공동 시청하며 동네 사람이 한데 모여 김일 선수의 박치기 레슬링에 환호하던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가 초고도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교육 혁명에 달렸다고 본다. 창의 교육, 기초과학 교육까지 전반에 걸쳐 정비가 시급한 시점이다. AI·로봇기술이 통계수학, 미적분, 기하학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인터넷·게임 등을 현명하게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 AI·로봇 등 신기술 확산에 따른 윤리관 정립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17일 발표된 입시 지옥 개선 방향은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다. 모호한 공정성 개념에 오락가락하는 사이 4차 산업혁명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은 뒷전이 됐다. 혁신 인재는 하루아침에 양성되지 않는다. 초·중·고 교육부터 대학(원)까지 이어지는 교육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 미국은 일찌감치 10여년 전부터 공교육에 STEM 교육을 도입했다. 반면에 국내 기업에선 인재가 없다는 하소연이 들린다. 스마트폰으로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되는 삭막한 가정교육을 보완할 인성교육 대책도 빠져 있다.

과학기술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점차 모든 산업에 로봇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격변기에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올바르고 경쟁력 있게 기를 수 있을 것인가. AI가 더욱 고도화돼 생산·제조에서 유통·서비스까지 확산되는 변화 물결 속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고경철 KAIST 연구교수 kckoh@rit.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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