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와 말복이 지났고, 1주일 뒤면 처서(處暑)다.
여전히 낮 최고 기온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어느덧 아침저녁으로는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음을 느낀다.
처서는 24절기 가운데 더위와 관련된 단어(暑)가 마지막으로 남아 버티는 절기다. 입추부터 가을 절기라고는 하지만 피부로 체감하는 가을은 통상 처서가 지나야 한다.
개인사(군 제대)와 역사 사건(김일성 사망)으로 1994년 여름 더위를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올해는 모든 이가 그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 하며 지나는 것 같다.
힘든 더위의 기억은 공무원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장 더운 시점에 중앙행정기관의 실내 온도는 28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나마 냉방이 가동되는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얼마 전 만난 중앙부처 공무원은 통상 출근 시간(8시 이전)부터 1시간여 동안 하루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쓰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오후 6시 이후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업무 능률이 오를 수 없는 환경임에는 분명하다. 더욱이 이전까지 공공기관 실내 온도는 26도였다. 가장 무더운 해를 더 덥게 보낸 셈이다.
공무원이 덥게 보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최근 공무원이 느끼는 직(職) 또는 업(業)에 대한 분위기와 우리 사회의 시선을 짚어 봤으면 한다.
공무원을 지칭할 때 공복(公僕)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다. 여기서 복은 '종(servant)'이라는 뜻이다. 영어 표현으로도 'public servant'라고 쓰니 동서양을 떠나 공무원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최근 공무원의 생각은 많이 달라진 거 같다. 'servant'보다는 'official'이라는 단어를 써서 'public official'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굳이 해석하면 '관료'쯤으로 쓸 수 있다. 직업 의미가 더 강조된 표현이다. 최근 영어 표현도 이를 더 많이 쓰는 추세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단순히 표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공무원을 바라보는 국민 시각이 변했듯 공직에 몸담은 이들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국민 한 사람으로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공무원이 느끼는 상실감을 먼저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공직에 대한 예우, 존경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존중도 받기 어렵다. 지위고하를 떠나 크게 다르지 않다.
연금은 매년 줄고, 연금 개시 연령도 계속 늦춰진다. 퇴직 시점은 점점 빨라지고, 퇴직 후 재취업도 쉽지 않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재취업 심사는 '퇴직 후 3년 백수'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직무와 관련해 형사 책임을 지는 사례까지 크게 늘었다.
중앙부처 과장급이나 초임 국장이 일반 기업으로 대거 이직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최근 청와대 고위 인사 입에서 “관료의 조직적 저항에 들어갔다”는 말까지 나왔다. 개혁의 최대 걸림돌 또는 적폐 대상으로 꼽은 셈이다.
물론 그동안 많은 관료가 정권에 줄서고,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많이 앞장 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화해서 모두가 그런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냥 적당히 일하게 할 것인지 사명감으로 무장시켜서 국민을 섬기게 할 것인지는 부리는 이의 선택이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