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 든 지 한 달. 산업계, 그나마 준비가 잘 됐을 것으로 기대했던 대기업에서조차 비명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와 국회가 밀어붙여 근로시간이 단축됐지만, 현장에서는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일거리를 줄이는 것이 아닌 근로시간만 맞추겠다는 '관리감독 강화'식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체 인력을 충원하려고 해도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고, 중소·중견기업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정부는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라고 독려했지만, 막상 3개월로 제한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가지고는 현장에서 활용하기 '빡빡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제도 안착을 위한 추가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안 되면 범법자 될 판
주 52시간 근무 시행이 된 지 이제 한 달여 지났지만, 소프트웨어(SW)와 정보기술(IT)서비스 업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국가 재난 관련 정보통신기술(ICT)분야 예외 업종 지정 등 업계 특성을 반영한 정부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업계는 특정 시일에 업무가 몰리는 ICT 프로젝트 특성상 탄력적 시간근로제 단위기간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긴급 장애 대응 업무도 특별연장근로 수준에서 벗어나 예외 업무로 지정돼야한다는 입장이다.
한 중견 IT서비스 업체 대표는 “업계 특성상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특정 기간에 주 52시간 이상 근무가 몰리는 경우가 많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3개월로는 부족하다”면서 “정부가 공공뿐 아니라 기업이나 민간 시장에서도 근무 시간 외 업무 지시 근절을 위한 모니터링과 관리감독을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정보보호 업체 대표는 “정부가 사이버 위기 대응 등 긴급 업무에 대해 연장근로를 허가했지만 인가여부는 사안별로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이 개별 판단토록했다”면서 “사안별로 결정이 달라질 여지가 있어 사업자 입장에서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보호 분야처럼 24시간 모니터링 등이 필요한 업무는 예외 업무로 명확하게 지정하거나 아예 예외 조항을 두지 않아야 사업자 혼란을 줄인다”고 덧붙였다.
SW산업협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고 300인 이상 대기업은 이미 준비한 부분이 많아 당장 이슈는 없지만 휴가철이 끝나는 다음달부터 현장 목소리가 취합될 것”이라면서 “업계가 초반부터 요구했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정보보호 등 특수 분야 예외 업종 지정 관련건은 조속히 처리돼야한다”고 말했다.
SW·IT서비스 업계는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연장 △2018년 7월 1일(주52시간 시행일) 이전 발주 시행한 공공계약 사업 계약 금액 조정 △정보보호 등 사이버 위기 대응 분야 예외 업무 지정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주52시간 제도 시행일 이전 발주된 공공계약 사업은 계약기간과 계약 금액을 조정하는 등 관련 내용을 지침에 반영했다. 발주자 업무지시 관리감독 강화와 ICT 긴급 장애대응 업무는 특별한 사정 발생 시 연장근로를 인정키로했다.
◇사람 구하기 힘든데 근로시간만 줄어 '전전긍긍'
전자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고 정시 퇴근하는 분위기가 차츰 잡혀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부서에 따라서는 근로 특수성이 다르고, 업무시간 외 근무 등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내부적으로도 고심할 것도 많다”고 밝혔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 일자리 충원이 실현되기엔 시간이 오래걸리고 인건비 부담도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원 인건비가 부담스러운 중소·중견기업계로서는 근로시간만 줄어들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청한 기업 관계자는 “업무량과 인원 수는 그대로인데 근로시간만 줄어들면서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대기업보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중견기업계로서는 직원 한 명당 연 고정비가 1억원 이상 들어가 신규 채용이 부담스럽다. 자칫하다 주 52시간 위반으로 사업주가 고발당할 수 있어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자업계 전반적으로는 주 52시간 근무 도입 이후 표면적으로 큰 혼란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달부터 52시간 근무 적용을 받는 기업 다수가 이미 연초부터 주 52시간을 상정한 근무제도를 시범 도입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6개월 유예기간 동안 주 52시간 근무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인원 추가 수요 등 세부 문제점을 보완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주 52시간 근무 시행에 발 맞춰 직원 근로시간 유연성을 높였다. 삼성전자는 개발, 사무직을 대상으로 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월 평균 주 40시간 내에서 출퇴근 시간과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직원이 근로시간을 직접 관리하는 재량근로제도를 도입했다. LG전자도 주 40시간 내에서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일부 부서에 도입했고 생산직종을 중심으로는 탄력근로제를 적용했다.
◇주52시간 취지는 공감, 산업 특성 고려한 유연성 필요
제조업계는 주52시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산업 특성을 고려해 좀 더 유연하게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근로 시간 단위를 1주 단위가 아니라 수개월, 1년 단위 등으로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조업계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스마트폰·자동차 등 대기업에 부품·소재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많다보니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이 몰리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시장 역학관계나 경기변동에 따라 생산량·단가조절 등이 일어난다. 계절에 따라 수요 변동이 큰 제품을 생산할 경우 인력이 몰리는 기간이 더욱 뚜렷하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지 않으면 큰 손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2교대, 3교대로 바쁘게 일할 때도 있지만 일이 없는 기간에는 장기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주 단위로 근무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면 일이 몰리는 기간을 위해 더욱 많은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 일감이 적을 때 감내해야 하는 비용도 더욱 늘어난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가 있지만 특정기간에 업무가 집중된다는 이유로 인정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용 대상이 자연재해나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재난·사고로 한정된다.
다양한 전자기기·부품의 소재를 제공하는 화학업계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특성상 사고나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공장을 멈추고 2~3년 단위로 대규모 정기보수를 실시해야 한다. 이전에는 이 기간 인력을 집중 투입해 생산이 멈추는 시간을 최소화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제품 개발·설계 등을 맡은 고급인력도 일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고급인력이 대기업에 몰리기 때문에 더 고용하고 싶어도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연한 근무를 인정하지 않으면 신제품 설계가 늦어져 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은 “전체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인력 추가만으로도 버거운데 일이 몰리는 일부 기간을 위해 1년 내내 최대 인력을 유지하려면 인건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간다”고 하소연했다.
근로시간 판단기준
[자료:고용노동부]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