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반도체 산업에서도 골 넣은 벨기에…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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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이 끝났다. 벨기에는 아쉽게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4강에 오르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벨기에는 축구뿐만 아니라 반도체 강국이다. 우리나라 3분의 1 면적에 인구가 5분의 1인 작은 나라가 어떻게 자본, 장치, 고급인력 중심인 반도체 산업에서 기술 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는 시사점이 크다.

벨기에 루벤에는 반도체 연구소 'IMEC'가 있다. 1984년에 네덜란드어권 플라망 지방정부 지원으로 세워진 IMEC는 비영리 독립 기관으로서 2조원 규모 연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70여 국가에서 온 연구원 3500명이 차세대 반도체와 스마트 시스템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2017년에는 수입 7000억원을 달성, 명실상부한 세계 반도체업계 선두 연구소다.

IMEC가 세계 유수 반도체 연구소로 거듭날 수 있게 된 이유는 산업 수준에 맞는 인프라 구축과 활용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선도 및 자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TSMC 등 칩 제조사뿐만 아니라 AMAT, ASML, LAM, 머크 등 장비·재료소재 회사 등 200여개 반도체 관련 회사가 한 곳에 모여서 상호 협업과 경쟁을 통한 차세대 반도체 핵심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수입 가운데 70%를 회원사 회비 등 시장으로부터 얻어 자생하고 있는 독특한 수입 구조로 돼 있다. 한국은 대다수 국공립 연구소가 수입 가운데 80% 이상을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IMEC는 좋은 벤치마킹 대상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연구원으로서 IMEC 발전과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2015년에는 한국 중소기업이 처음 개발한 장비를 IMEC 300㎜ 연구 시설에 설치, 3년 동안 공동 개발을 수행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글로벌기술자문단 일원으로 활동, 중소기업과 IMEC 협력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해외 유수 반도체 회사를 상대로 한 장비 판매 실적이 증가하고 코스닥 상장 후 주식 가치가 5배 이상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도 50% 이상 증가했다. 이는 IMEC과 공동 개발을 통한 대표 성공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연구 인프라 중요성을 보여 준 좋은 사례가 된다.

최근 반도체 후방업계 테스트베드 구축을 위한 정책에 IMEC가 좋은 사례로 거론됐다. 반갑지만 한편으론 걱정스럽다. 이미 여러 정책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투자가 수차례 이뤄졌지만 세계 시장에서 알아주는 연구소 하나 없는 성적표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와 재료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국산화율을 높인다고 그 기술이 해외에 진출한다는 것은 담보할 수가 없다. IMEC에 한국 중소기업 장비가 진입할 수 있게 된 핵심은 그 기업이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천 기술이 없는 국산 장비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특허 분쟁 전장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이는 경쟁 기업과 공정한 기술 평가를 통한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중 핵심이다. 테스트베드 구축은 국산화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과 함께 해외 진출을 위한 원천 기술 확보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자생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는 반도체 산업이 강건해지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IMEC와 비교되는 미국 대표 반도체 컨소시엄 세마테크 몰락에서 보듯 인프라 구축만으로 지속 성장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세마테크는 세계 최대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지리상 이해관계, 조직 구성원 주인 의식 결여,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 등 이유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에 따라서 정책 반영 이전에 지속 성장 가능한 전략을 세심하게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매년 최대 수익을 경신하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는 골든타임을 외치며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반도체 시장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세계 장비업계 10위권 안팎에 한국 기업 하나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런 상태로 반도체 시장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면 과연 한국에는 무엇이 남게 될는지 염려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강건하게 하기 위해서는 칩 제조사 수준 분석·계측 장비 등 중소기업에 파급 효과가 큰 인프라 구축에 대한 세심한 조사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정책 관료는 기존 반도체 연구시설 활용, 지역 경제 발전, 인력 양성 등을 고려해 치밀한 전략과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 또 해외에 있는 한인 과학기술자, 해외 기관과 협력해서 해외 시장 발굴 및 진출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만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 전에서 손흥민 선수가 보여 준 시원한 중거리 슈팅 골 같은 성과를 내는 기업을 육성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반도체는 물론 산업계 전반에 걸쳐 긍정 파급 효과를 낼 것이다.

김태곤 KIAT 유럽 한인 글로벌기술협력지원단 운영위원 kint@imec.be

IMEC 책임연구원 겸 한양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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