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용두구미' 된 금융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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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 금융위원회에서 금융개혁 일환으로 핀테크와 인터넷전문은행, 개인간금융(P2P), 빅데이터 등 소위 4차 산업 진입을 위한 판을 깔아놨지만, 현 정부에서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는 '용두사미(龍頭蛇尾)' 사자성어와 전·현직 금융위원장의 이름을 빗대 '용두구미'라는 말까지 생겼다.

금융IT 분야는 심각한 상황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취임 후, 금융IT 사업은 각종 정부 규제와 중점 사업에서 멀어지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구관(舊官)의 향수'에 빠진 금융권이다.

◇줄줄이 무너지는 금융개혁 프로젝트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건 현장소통과 금융개혁이었다.

실제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했고, 핀테크,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산업 근간 풀뿌리 규제를 지우는 작업을 했다. 또 금융 종사자와 현장소통을 이어가며 굵직한 산적과제를 풀어냈다는 평가다.

정치권과 기득권 반대도 심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시키기 위해 국회는 물론 기존 은행 등을 설득했다. 그리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탄생했다. 은산분리라는 거대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시로 정부부처간 협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임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은 소위 '메기'에서 '계륵'으로 전락했다.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은 아예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다.

최근 금융권 비대면 상품 약관 변경에만 한달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정치권에 잘보이기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도 난무한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개정한 밴 수수료 체계 개편안이 대표적이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카드사 대표를 소집해 별도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오래도록 번영할 수 있다”는 중국 노자의 말을 인용, 밴 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치권 포퓰리즘 공약으로 매년 등장하는 카드 수수료 개편안을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해결했다는 자평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여신금융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쇼'라고 평가 절하한다.

밴 수수료 개편의 핵심은 그간 운영하던 정액제를 정률제로 전환해 영세가맹점 부담을 줄이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개편안은 이미 시장에서 롯데와 삼성을 제외한 카드사가 시행 중인 정책이다. 또 밴 수수료 개편에 따른 직격탄을 맞는 곳은 밴(VAN)업계다. 하지만 금융위는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만 불러 간담회를 개최하고 계획을 발표했다.

밴업계는 아예 초청받지 못했고, 무서명거래와 카드 직승인 등 카드사와 갈등을 겪는 여러 사안은 현장에서 제외됐다.

한 밴사 대표는 “현장에서 만들어진 밴 수수료 개편안을 마치 정부가 영세 약자의 편에 서는 것처럼 포장해 발표하고, 사업 당사자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금융노조도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이런 조치에 반발했다.

허권 금융노조위원장은 “제도 개선 협의가 아닌 확정 후 통보하는 현장 간담회였다”며 “독재정권에서나 하는 방식, 관치금융의 전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임종룡 위원장이 4차 산업혁명 일환으로 내세운 빅데이터 산업도 고사위기다.

당시 임 위원장은 입법 개정은 물론 소위 비식별화 정보를 고도화하는 '동형 암호화'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동형암호는 암호화된 상태에서 연산을 할 수 있는 차세대 암호화 기술이다. 이로 인해 통신사와 금융사, IT기업에 이르기까지 첨단 빅데이터 산업 생태계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빅데이터 사업 역시 현 정부 출범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통신사 전용 CB설립은 물론 비금융정보 활용방식 개선 사업, 보다 객관적인 데이터 검증을 위한 독립위원회 설치도 헛구호에 그쳤다.

◇신성장산업 가로막는 '구태', 창조혁신은 헛구호

현 금융위원회는 혁신보다는 규제와 리스크를 선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때문에 사고를 치는 것보다는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에 방점을 둔다. 모든 금융정책이 이 프레임에 빠져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한국 민간 블록체인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미 은행, 증권 등에서 공인인증서 대체 작업을 시작했고, IT기업들이 독자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을 투기판으로 간주하고 암호화폐공개(ICO) 원천 금지 등 사후 규제 강화에만 집착한다. 그러는 사이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해외로 팔려나갔고, ICO기업 또한 한국을 떠났다.

어정쩡한 금융당국 행보에 한국 암호화폐 시장은 상품이나 서비스, 자산도 그 무엇도 아닌 것이 됐다. 시장 혼란만 가중된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암호화폐거래소 대표는 “글로벌 블록체인 콘퍼런스는 물론 주요 행사나 콘퍼런스에 금융위원장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며 “금융당국 내부에서 블록체인은 금기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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