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진통제 '타이레놀' 편의점 판매 논란이 사회 이슈로 확대되지만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렇다 할 대책조차 수립하지 못한다. 편의점 판매 상비약 품목 선정 '명확한 근거'에 입각한 하위법령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상비약 판매 제외 품목 가이드라인도 없다.
1일 업계 따르면 편의점 상비약 판매 근거를 담은 '약사법'이 특정 이익단체, 이해관계에 따라 입맛대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열릴 예정이었던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조정위원회(이하 심의위)도 개최가 무산됐다.
편의점 상비약 판매 근거는 '약사법 제44조의2(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의 등록) 제1항이다. 이에 따르면 안전상비의약품은 '일반의약품 중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하며 환자 스스로 판단해 사용하는 것으로 해당 품목의 성분,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구매 편의성 등을 고려해 20개 품목 내 범위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의약품'이다. 약국이 아닌 장소에서 판매하는 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자로 등록해야 한다.
약사법 시행규칙 제19조(안전상비의약품의 지정 시 의견청취)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은 법 제44조의2제1항에 따라 안전상비의약품을 정해 고시하는 경우, 보건의료나 약사(藥事)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공익을 대표하는 사람 등 의견을 듣는다. 업계 관계자는 “법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법에 따르면 안전상비약 품목 선택은 심의위 의견을 '참고'만 할 뿐이고 최종 결정 권한은 결국 '복지부'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관리 규정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근 논란이 된 의약품은 '타이레놀'이다. 약사단체는 편의점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품목 '타이레놀' 편의점 판매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사회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타이레놀 등 일부 안전상비의약품이 의약품 오·남용을 조장해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했다. 청와대 청원도 제기됐다.
편의점 판매직원 전문성이 부족해 무분별한 편의점약 확대는 약물 오·남용 방치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했다. '안전성' 논란이 발생하면 품목을 취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미약하다. 약사법에는 '전문가 의견을 따른다'는 문구만 명문화됐다. 직역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과학적 기준에 의거한 의약품 재분류 기준 가이드라인이나 법령이 마련돼야 한다.
복지부는 법적 근거가 있다는 입장이다. 윤병철 복지부 약무정책과 과장은 “안전상비약 판매 품목 조정을 결정하는 심의위는 약사법에 따르고 심의위는 시민단체, 의료계, 약계, 언론 등 균형 있는 전문가로 구성돼 심의위와 복지부 결정은 중립성을 담보한다“면서 “단 안전상비약 판매 제도 시행 핵심 축인 약사단체를 무시할 수는 없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사단체 주장이 국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 포장단위는 약국과 다르다. 아세트아미노펜 500㎎은 최대 용량은 4000㎎/pack(8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준이다. 편의점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국민 건강권을 위한 제도 보완은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과학적 근거'에 준해 타이레놀 등 편의점 의약품 판매 범위를 규정한다. 미국,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주요 선진국 등 각 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제품을 약국 외 일반 슈퍼, 편의점,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한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은 진통제 중 높은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의료전문가(의사, 약사)가 아닌 일반 소비자 선택에 의해 구입 및 복용이 가능하도록 자가투약 의약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현재 타이레놀 500㎎ 정을 포함해 타이레놀 160㎎ 현탁액, 정제 제품이 약국 외 일반 대형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 소비자가 선택해 구입 가능하다. 타이레놀 500㎎정은 일반적으로 아는 블리스터 포장(10정, 24정) 외 100정, 325정 병 포장 형태로 자유롭게 대량 구매가 이뤄진다. 과용 문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는 이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진통제 타이레놀에 대해 간 손상 위험을 줄이도록 성분 함량과 허용량을 줄이고 사용주의 경고문을 강화하도록 권고했다. 남은경 경실련 팀장은 “편의점 상비약 판매는 의약품 사용 이익집단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과학적 분류 기준에 따라 판단돼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장윤형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wh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