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靑 '혁신성장' 이끌 항해사 절실"…기업과 새로운 관계설정·소통도 필요

# “경쟁 국가는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혁신성장' 정책을 평가한 한마디다. 혁신성장은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현 정부 경제정책 양대 축이지만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경쟁국 대비 정책 추진 속도가 느리고, 국민 체감도도 떨어진다는 평이다. 청와대 내에 혁신성장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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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문재이 대통령이 2018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우리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서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경제팀의 분발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 '속도'를 재차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첫 혁신성장점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구체화된 사업으로 성과를 창출해 혁신성장이 무엇인지를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다. '창조경제'처럼 개념 논란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실체로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혁신성장 정책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혁신성장 정책 자체가 단기 성과와 어울리지 않는다. 혁신과제는 근본적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 빠른 시일 내에 성과가 난다면 그만큼 대대적인 변화를 동반한 혁신이 동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단기 성과를 강조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거버넌스 체계의 한계도 나타났다. 혁신성장을 위해 정부가 내세운 8대 핵심 선도사업 대부분은 단일 부처 단위에서 추진할 업무가 아니다. 초연결지능화·스마트공장·스마트팜·핀테크·에너지신산업·스마트시티·드론·미래자동차 사업은 여러 부처 간 '협업'으로 끌고 가야 하는 사업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대를 멨지만 제대로 된 부처별 교통정리와 효율화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각 사업별 주무부처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스마트공장은 산업부, 스마트팜은 농림부, 스마트시티는 국토부 식으로 정리하다보니 새로운 접근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기존 부처에서 수년 전부터 해왔던 사업 연장선상에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다 보니, 시각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는 혁신성장 방향성을 제시하기 보다는 여러 부처 사업을 모아서 단순히 '스탬플러'를 찍는 역할을 했다”고 꼬집었다. 각 사업에 실질적인 혁신성장을 도모할 요인을 많이 포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김 부총리도 짧은 기간 일부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근본적 체질 개선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고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열쇠는 청와대가 쥐었다. 청와대 내 혁신성장 '항해사'는 장하성 정책실장이다. 장 실장은 일자리를 비롯해 부동산, 교육뿐만 아니라 공정경제 등 소득주도 성장 정책까지 챙기고 있다. 상대적으로 혁신성장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들 정책은 어젠더별로 전담 수석실이 있다. 일자리수석, 경제수석, 사회수석이 맡아 주도적으로 정책실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혁신성장 정책은 청와대 내 전담 수석실이 없다. 과학기술보좌관실이 지원하지만 다른 수석실과 규모와 위상을 비교할 때 추진 동력이 떨어진다.

임규건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출범 2년차를 맞이한 만큼 이제는 보다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혁신성장을 가속화 해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청와대에 주도적으로 이끌 전담 조직이 없으면 정부 부처 역학 구조상 속도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혁신성장을 뒷받침할 산업계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지수를 포함한 경제 지수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및 4차 산업혁명 대응력도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발표한 '2017년도 ICT 기술수준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ICT 10대 기술 가운데 절반인 5개 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했다. SW 분야는 중국과 동급이고, 이동통신, 네크워트, 전파위성, 기반 SW컴퓨팅, ICT 디바이스 등 5개 분야에서 뒤쳐졌다. 2016년까지만 해도 우리가 앞선 분야다. ICT 산업 위기감이 고조됐다.

주변국은 더 격차를 벌일 태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과학원(CAS) 학회에 참석해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혁신기술에 기반한 산업혁신이 국제 경제 구조를 변화시시키고 있다”며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을 사례로 꼽았다. 그러면서 국가 차원에서 높은 수준의 블록체인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출 것을 시사했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꼽히는 국가 지도자가 블록체인 성장성을 언급하면서 한국 산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 정책에서 사회 부작용에 초점을 뒀다. 기업의 신사업 추진 등 기본적인 경영 활동마저 위축시켰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 같은 신산업을 국가 미래 기술로 인식하는 사람이 청와대에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팀장은 “결국 혁신성장의 가장 큰 툴은 규제개혁이어야 한다”며 “노무현 정부 시절 '덩어리 규제 해소'와 같은, 보다 과감한 규제개혁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혁신성장이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기업과 보다 친밀감 있는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유경제와 소득주도 성장 등에 주력하고 있는 현 청와대 정책실과는 현실적으로 소통하기에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신산업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지 청와대와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에서 솔직하게 얘기했다간 적폐로 찍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정재계 간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내 혁신성장 전담 조직 신설과 함께 실행 전략을 세울 정부 부처의 역할·책임(R&R)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변화와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부처별 핵심 미션을 다시 설정하고, 일부 기능 조정을 통해 교통정리를 해야 혁신성장 정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