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대기업과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금융회사 소속 총수일가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포함하도록 한 지배구조법 개정안 추진에 이어 삼성생명을 조준해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 소유 문제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금융위발 지배구조 개편 신호에 금융투자업계도 대규모 지분 변동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23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둘러싸고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을 필두로 한 대기업의 대대적 지배구조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 위원장은 앞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관련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삼성생명을 겨냥해 삼성전자 지분을 단계적·자발적으로 개선할 것을 지시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각각 8.23%, 1.44%로 총 9.67%가 계열사 출자분이다. 올해 예정된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이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계열사 지분은 각각 8.88%, 1.55%로 총 10.43%까지 늘어난다.
당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금산법에 맞춰 10%를 초과한 0.43% 안팎을 매각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의 발언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매각 지분이 당초 예상을 웃돌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융위원장의 발언으로 상당수의 지분을 일정기간 동안 지속 처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될 여지가 크다”며 “삼성전자 지분의 처분 규모와 분할 매각 기간 등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유배당 계약자 배당 문제, 공시기준이율 상승 등에 따른 조달금리 상승 문제 등이 동반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제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 기준 총자산대비 3% 이상의 주식 소유가 시가 기준으로 변경된다. 7.43%에 이르는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삼성생명 지분 매각이 순차로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달 4일부터 액면분할된 주식이 거래돼 유동성이 크게 확보되는 만큼 일시에 지분 매각에 나서기 보다 시장 여건에 맞춰 중장기 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 삼성그룹의 서초사옥 매각도 삼성전자 지분 확보를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한번에 대거 매각하고 삼성물산이 일시에 대규모 매입한다는 접근에는 부정적”이라며 “삼성은 여러 대안으로 감독당국과 조율 후에 최종안을 중장기 로드맵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소유 전자 지분 매각은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SDI가 지난 10일 삼성물산 지분 2.11%를 블록딜 처리에 나서는 등 그룹 내 순환출자 해소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는 8월까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행보다.
미래에셋, 한화, 교보생명, 현대차, DB, 롯데 등 금융그룹 통합감독 대상에 거론되고 있는 여타 대기업도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6월까지 금융그룹 통합감독 최종안을 공개하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컨설팅, 미래에셋캐피탈,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3개사의 지분 관계 단순화가 당면 과제다. 높은 내부거래 의존도와 그룹 간 위험 전이 가능성 등으로 인해 공정위로부터 계속해 압박을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기식 금감원장 낙마로 인해 금융혁신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금융위가 직접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며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당면 과제라 시장에서도 대기업발 대규모 블록딜과 구조 개편 이슈가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