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외주 생산을 늘리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첫 적용대상인 300명 이상 사업장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신규 채용을 하지 않거나 줄이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A 장비업체 관계자는 “정규직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신규 인력을 더 뽑으면 좋겠으나, 현실적으로 무작정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느냐”면서 “이 때문에 외주 조립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핵심 장비는 내부에서, 그렇지 않은 장비는 외부 업체가 조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주 생산이 확대될 경우 기술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B 장비업체 관계자는 “외부에서 조립 생산을 할 때 기술이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비에 들어가는 각 부품 단위로 모듈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면서 “모듈화된 부품을 조립하는 것은 단순 작업이기 때문에 외주 업체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인력만 뽑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계약직 확대가 현 정부의 고용확대 방침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외주 생산을 늘리는 이유는 당장 주52시간 근무제도에 해당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크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는 300명 이상 사업체에만 해당된다. 300인 미만 사업체는 오는 2020년, 5명에서 50명 미만 사업에는 2021년 7월부터 각각 반영된다.
C 장비업체 관계자는 “조만간 완공되는 신공장은 신규 법인을 설립, 300명 미만 사업장으로 만들 예정”이라면서 “2020년이면 주52시간 법에 적용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같은 안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D 장비업체 관계자는 “장비 한 대 만들어서 납품하는데 적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걸린다”면서 “고객사에 이 납기일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납기일이 늦어지면 해외 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뒀지만 사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주 단위가 아닌 반기 혹은 연 단위로 기준 변경 등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규모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작은 장비 기업이 다수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부가 추가로 만들고 있다”면서 “작은 기업이 큰 기업으로 성장할 동기가 차단됐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