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비 원가 공개가 현실화됐다. 대법원이 참여연대 손을 들어주면서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는 영업통계와 손익계산서 등 서비스 원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어 이통 3사는 당혹스럽다. 공개되는 정보 범위와 대법원 판결이 영업 경쟁력에 미칠 영향은 두 번째 문제다.
공개 대상이 2세대(2G)와 3세대(3G)를 넘어 장기적으로 LTE와 5G로 확대되고 보편요금제 도입 등 통신비 인하 압박 근간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통신서비스 필수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전방위로 늘어날 여지가 커졌다. 기업 경영 위축으로 이동통신 시장뿐만 아니라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전방으로 파장이 커질 것이다.
◇서비스별 세부 원가 공개는 처음
대법원 판결로 이통 3사가 공개해야 하는 서비스 시기는 2005년부터 2011년 5월5일까지다. 2G·3G 서비스가 대상이다. 공개 자료는 영업통계와 손익계산서, 대차대조표, 역무별 영업외 손익명세서, 영업 통계명세서 등이다.
이 중 손익계산서나 대차대조표 등은 외부 요청에 의해 공개가 가능하다. 영업통계 중 총괄원가도 공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역무별(서비스별 원가) 공개는 처음이다. 원가에는 매출원가, 영업 경비, 관리비 출연금, 감가상각비 등이 포함된다. 세부 항목별 원가를 통해 이통사가 적정 이동통신비를 책정하고 있는지 공개 검증하자는 게 참여연대 의도다.
역무별 원가가 공개되면 원가보상률도 계산할 수 있다. 원가보상률은 수익(매출)을 원가(비용)로 나눈 값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원가보상률이 100%보다 높으면 요금을 인하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원가보상률은 전기나 가스처럼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에서 이익률이 과다한지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독점 기업 서비스에 대해 요금 적정성을 판단하는 지표다. 이를 민간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원가보상률이 100% 미만이면 통신비를 올려도 된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면서 “이통 시장은 독점도 아니고 이통사는 공기업도 아닌데 원가 공개나 원가보상률 등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LTE로도 확대, 보편요금제에도 영향
원가 공개 대상인 2G와 3G 가입자는 약 1300만명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2011년 이후 정보도 정보공개를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LTE 가입자로 대상이 확대되면 6400만 전체 가입자에 대한 원가 정보가 공개된다. 정부 역시 2011년 이후 정부 공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통사는 원가 공개 자체가 요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통요금에는 망 투자와 영업에 소요되는 원가뿐만 아니라 단말기 비용, 지원금, 경쟁 상황 등 여러 요소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는 “통신비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포함돼 있다”며 “원가를 공개한다고 해서 과연 통신비 인하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통사는 원가 공개를 시작으로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가 공개되고 해당 원가만을 기반으로 통신비를 인하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 정부가 통신비에 간여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당장 보편요금제 도입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보편요금제는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국회도 위헌 소지를 거론하며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규제개혁위원회 통과가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로 보편요금제 도입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논의 밖으로 물러났던 기본료 폐지 역시 다시 고개를 들 전망이다. 이통사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통신비는 자율 경쟁으로 결정해야
참여연대는 2011년 통신 서비스가 국민 생활 필수재이기 때문에 원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국민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이동통신 요금 투명성 제고를 위해 관련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영업 보고서뿐만 아니라 이통사가 이용약관 인가신청 및 신고 당시 제출한 요금산정 근거자료, 정부 심의·평가 자료까지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을 통해 법원은 통신서비스가 필수재라는 정부의 생각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는 통신은 국민 누구나 사용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공공재나 필수재 성격이 강하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통사 반발을 무릅쓰고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서비스가 필수재인지 여부에 대해선 여전히 보다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시대 상황과 기술 트렌드도 살펴야 한다.
이통사는 이날 판결이 민간기업 영업기밀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신요금은 복잡한 체계로 구성되는 만큼 통신서비스가 필수재라고 하더라도 외부에서 요금 결정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이통사 임원은 “통신 요금은 시장 자율 경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원가 공개 등을 통해 자의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면서 “원가만 가지고 통신요금을 결정한다면 5G 시대 초기 통신요금은 수십만원에 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