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장르뿐 아니라 파급력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온 K팝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제조업 중심 수출산업을 잇는 국가경쟁력의 핵심까지 진화했다. 각계에서는 K팝 미래에 다방면의 노력과 교류가 이뤄지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공급자인 업계 중심으로 분석이 이어질 뿐 근본적인 문화 수요자이자 기틀인 팬덤문화의 분석은 피상적으로 이뤄진 게 현실이다. '컬처에센스(Culture Essence)'에서는 K팝 한류문화 발전 원동력인 국내 팬덤문화 변천과 특성을 살펴보고 가치를 점검해본다.
◇과거 팬덤문화, '관념적 거리감 속 수동형 객체로 머물러'
국내 팬덤문화는 1990년대 중후반 '아이돌문화' 태동기를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로 나뉜다. 이 구분은 단순한 시기 구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엄밀히 따지면 실질적으로는 아티스트 가치도나 팬덤의 활동영역 등 다양한 특성에서의 차이에 따른 구분으로 볼 수 있다.
먼저 과거 팬덤문화는 아티스트의 낮은 대우와 인식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수동형 객체'로 특징을 지닌다. 과거 역사 속에서 비춰지던 모습과 인식들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아티스트의 과거 원류격인 '남사당패'나 '광대패'는 당시 대중 가운데서도 비천한 신분의 백성이 해왔다. 이같은 인식이 하나의 정체성처럼 굳어지면서 현대 사회까지 아티스트 직군에 거리감 자체가 상당히 컸다. 당시 아티스트는 판사·의사 등 전문직과도 비슷한 원류를 지니지만, 해당 직업에 대한 업무 파급력과 권력 등에 있어서 대중 체감도가 적어 실제 대중적인 위치에 무관하게 상당히 낮은 대우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아티스트에게 예술적 성향을 펼치는 것과 함께 기본 생존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며, 결국 아티스트 가치도 하락과 추가적으로 연결돼 소위 '딴따라'라는 비속어로 불리는 등 지속적인 낮은 대우와 시각으로 접근하게 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에 맞춰 과거 팬덤문화는 지극히 수동적인 형태로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대중과 아티스트 사이의 사회적 시각차뿐 아니라 콘텐츠 자체에 있어서도 해외 인기작의 벤치마킹 또는 번안작, 지나친 자극코드 등 서로 거리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상황이 빚어졌다. 물론 시대상을 반영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아티스트도 등장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당시 내부적으로 쏟아지는 시선만큼은 여전히 저급한 게 현실이었으며, 팬덤이라고 해도 꾸준히 아티스트의 예술성향을 지속시킬 만큼 이어지지 못했다.
요컨대 과거 팬덤문화는 역사 속 관념에 따라 만들어진 대중과 아티스트 거리에 따라 철저히 '수동형 객체' 모습으로, 아티스트 고유의 예술을 향유하고 호흡하기 보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수준에 급급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 팬덤, '아이돌·IT발전 통해 적극적 주체능력 발휘'
현대적 팬덤문화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띤다. 과거와 차이는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화향유 주체로 바뀐 점이다. 이는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개인 행복추구권 확대라는 대 전제 아래 아이돌 스타 출현과 IT 발전이 뒤따르면서 발생된 결과다.
특히 아이돌문화와 IT 만남은 문화영역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인식을 바꾸면서 팬덤문화의 변화를 불러왔다. H.O.T, 젝스키스, 신화, 클릭비 등 보이그룹과 S.E.S, 핑클 등 걸그룹으로 시작된 아이돌(Idol)문화는 해외에서 인기를 얻던 음악장르에서 다소 벗어나, 한국적인 색채와 대중적인 바람 등을 담은 음악으로 대중과 괴리를 점차 좁히기 시작했다. 여기에 IT 발전에 따라 콘텐츠 퀄리티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절대적인 대중노출 빈도 수를 끌어올리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크게 확대해나갔다.
팬덤문화는 아이돌스타를 대중의 내면을 반영한 시대 아이콘으로 인정하며 이들의 파급력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팬덤문화 수준 자체와 영역적인 한계성을 없애며 새로운 문화주체로서의 역동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을 띤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내놓는 K팝 아이돌 콘텐츠를 단순 소비하는 수준을 넘어서, 콘텐츠에 전문적인 비평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산물을 요구하고 자신들만의 아티스트를 창조하는 수준까지 와있다.
엠넷(Mnet) '프로듀스 101', '아이돌학교', JTBC '믹스나인', KBS2 '더 유닛' 등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 엠넷(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KBS '불후의 명곡', '유희열의 스케치북', MBC '일밤-복면가왕' 등 숱한 TV 음악프로그램들과 라디오프로그램, 심지어는 인기예능 등은 음악문화적인 콘텐츠와의 조화와 대중적 콘텐츠를 요구하는 현대 팬덤문화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트로피컬·레트로·트랩·퓨처베이스 등 장르적 유행과 앨범 또는 콘텐츠 노출 시기 조절 등을 감안하는 간접적인 잣대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논란해명이나 기부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팬덤이 해결할 정도로 적극적이면서도 막강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컨대 현대 팬덤문화는 기본 개인 인식수준 향상을 기반으로 아이돌스타의 출현과 IT 발전 등에 힘입어 폭넓은 영역에서 다양한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능동적인 문화주체'로 특징을 갖고 있다.
◇'한류 K팝의 원동력' 국내팬덤, 자정적 노력으로 '한류 K팝 시대' 이어가야
국내 팬덤문화 변천은 가요계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반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만큼 혁신적인 동력을 제공함과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도 보다 능동적인 주체로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하지만 그 역기능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선 적극적인 성향의 팬덤문화의 극단으로 아티스트를 보호하는 측면이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실 대중과 소통을 전제로 한 현대 아티스트에게는 상당히 딜레마다. 소셜 또는 현장접근 등이 쉬워진 현대적 팬덤들이 이를 악용해 무단으로 접근하거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소위 '사생팬'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는 상황에도 현대 아티스트는 자신의 입지와 인기도로 인해 그대로 묵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법적인 접근도 가능하겠으나 일부 '사생팬들'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팬들마저 굴레가 씌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성격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접점에서 고려사항도 있다. 최근 팬덤들은 아티스트와 보다 가까운 호흡을 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내놓는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는데 적극적인 까닭에, 실질 매출에도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과도한 구매경쟁이 진행되면서 금전적인 부담과 함께 실질적인 대중파급력이 적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례로 보이그룹 팬사인회 응모를 위해 적게는 수십장에서 많게는 수백장 단위까지 앨범을 구매하는 경우가 숱하게 발생한다. 상품구매가 본인자유 여하에 따른 것이지만, 대중적 파급력을 더 확대하는 차원에 있는 아티스트나 과도한 금전 지출의 폐해를 감당해야하는 팬덤 입장 모두가 불편한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팬덤 자체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업계 자체에서도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아티스트 장르적인 측면이다. 현재 팬덤이 갖는 적극적인 성향은 아티스트와 엔터테인먼트 업계 성장의 자양분이 된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으로 아티스트 장르적인 측면이나 가요계 다양성 측면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는 곧 현재 대중음악에서 힙합·댄스 계통으로 치우치는 장르적인 편중성과 함께 음악 자체보다 아티스트의 비주얼과 퍼포먼스적인 측면에 귀을 기울이게 되면서 가요계 성장점의 한계를 그대로 이어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요컨대 국내 팬덤문화는 과거의 수동적 면모를 떨치고 적극적 측면이 두드러지면서, K팝 한류의 원동력을 마련할 만큼의 위력을 갖게 됐다. 앞으로 국내 팬덤은 한류발전의 중요한 버팀목으로 자리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미래 경쟁력으로 뻗어나갈 한류 K팝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 무분별한 팬덤문화의 자정노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