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제는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만나도 자연스러운 화두가 됐다. 로봇, 드론, 인공지능(AI)도 하루가 다르게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결, 융·복합이란 특징으로 집·일터·놀이터를 비롯해 이제 우리 삶의 현장 어디든 정보통신기술(ICT)이 판치고 있다.
불과 5년 전에 소개된 스마트폰은 이제 누구나 들고 다니는 '도깨비방망이'가 됐다. AI 스피커도 호기심에서 대화상대로 진화해 “반려동물보다 훨씬 낫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기업 채용에 AI를 도입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영화 '그녀(Her)'에서 느낀 AI 로봇 '사만다'가 인간관계도 사회 질서도 파괴할 수 있다는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1인 가구 수가 전체 가구의 약 28%, 540만가구에 이른다. 고령화로 인한 고령자와 홀로 사는 젊은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부부만 사는 가구까지 포함하면 가위 가족 해체로 얘기해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부모·자식·형제 등 가족 간 갈등이 일반화됐고, 4촌끼리 가깝게 지내는 집안도 많지 않다. 혼밥·혼술·혼녀 등 '나 혼자 산다'로 표현되는 자발성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고독사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얼마 전 발표된 '반려견 안전 대책'의 뒷수습에 청와대까지 나섰다. '개파라치' 제도와 입마개 착용 확대 방안 논란이 지속되자 청와대가 개입해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를 기르는 사람이 1000만명에 이르는 가운데 애완동물로 인한 사회 문제가 연일 불거지고, 이로 인한 사람 간 갈등도 도를 넘고 있다.
요즘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이름을 붙인 '펜스룰'이 화제다.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단 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여성 보호를 위해 아예 접근을 차단하자는 뜻에서 미투 운동 대처법으로 각광 받고 있다. 성희롱·성추행에 엮일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그 시작이지만 여성을 남성을 유혹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사회생활에서 여성을 차단하는 행위로 굳어지면서 또 다른 형태의 성차별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두 세상이 너무 급격히 변해서 생기는 아노미, 카오스 현상의 단면이다. 극도의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인간관계 불신의 산물이다. 새로운 사회 공감대를 만들고 법·제도 장치와 문화·관행·의식까지 바꿔야 하지만 세상 변화 속도로 보아 항상 뒷북치기라는 단편 처방에 그칠 것이 뻔하다.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불신과 두려움만 쌓인다 해도 인간성과 인간관계 회복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을 멀리하고 개성과 개인에 충성하는 애완동물이나 로봇에서 해답을 찾는다면 인류가 다 함께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세상은 만들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과학기술이 또 다른 종교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성찰해야 한다.
오늘도 미투 관련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펜스룰이 답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회복해서 인간 혐오와 실망을 극복하고, 남과 여 구분 없이 특징과 역할이 다른 인간으로서 '다 함께, 더 가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과학기술의 지향점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 내가 아니라 우리, 돈이 아니라 행복이어야 한다. ICT 사명의 궁극은 바로 산업이 아니라 휴머니즘(인본), 즉 인간성과 인간관계 회복임을 잊으면 안 된다.
김영주 광주·전남ICT협회장(에너지밸리포럼 운영위원장) yjkimne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