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할 1300개 대상 품목을 확정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현실화했다. 우리 업계는 1300개 품목 중심으로 득실 계산을 시작했다.
4일 국제무역연구원은 이번 결정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0.9%(약 38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의 대미 총 수출도 0.03%(약 1억9000만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간재 수요 하락으로 인한 총수출 감소가 0.02%, 중국의 성장 둔화로 인한 감소가 0.01%를 차지할 것으로 풀이된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당장 영향이 크진 않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완제품,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일부 기업은 유탄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종별로는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자동차·가전 업계는 당장 생산이나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 생산거점이 있더라도 애초 미국향 수출 비중이 미미하거나,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을 다른 국가에서 생산해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한국타이어 등 국내 주요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타이어 업계는 국내와 미국, 중국 등에 생산거점을 확보했다. 미국과 중국 현지 관세 정책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 업계 역시 국내와 남미, 베트남 등 중국 외 지역에 생산거점을 마련했다.
업계는 규모가 있는 기업일수록 중국에서 생산하는 일부 품목에서 고율관세 적용을 받더라도 생산거점을 조정할 여력이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관세 대상에 빠져 반도체 분야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한국과 경쟁하는 중국산 부품 상당수가 포함돼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등 중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 실적이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 부품 분야에서는 TV용 PCB, 광다이오드(LED)와 태양광용 칩, 모듈 등이 관세 부과 품목에 포함됐다.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같은 개별 반도체 제품과 반도체 제조용 웨이퍼 측정 장비 등도 대상에 올랐다. 이들 제품의 미국 수출 비중이 크지 않아 우리나라에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기업의 대미국 부품 수출이 어려워지면 중국산 저가 공세에 위축된 한국 일부 부품업체는 호재를 볼 수 있다.
국내 최대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이 현재 생산하지 않아 큰 수혜도, 악영향도 없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다만 업계는 향후 미중 무역전쟁이 확대되면 어떤 식으로 사태가 전개될지 몰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통신장비 품목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폭탄에 큰 영향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와 ZTE 등 중국 대표 통신장비업체는 보안 위협 등 이유로 미국 시장 진입 자체가 묘연하기 때문이다.
2012년 화웨이 장비가 스파이 활동에 악용될 가능성을 제기한 미 의회 보고서가 나온 후로, 중국 통신장비 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은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지난달에는 미 정부가 화웨이나 ZTE 통신장비를 구매하거나 임차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되는 등 진입 장벽은 한층 높아졌다.
중국 통신장비의 미 수입이 사실상 불가해 25% 고율 관세는 무의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국내 통신장비업체가 수출 확대로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소폭으로 예상된다.
고성능 의료기기, 바이오 신약, 제약 원료 물질 등도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단기적으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중국산 고성능 의료기기, 바이오 신약 등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 초기 육성 단계여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거의 없다. 우리 제품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의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우리나라가 반사이익을 얻는 영역은 미미하다.
제약, 화장품 등 원료 영역은 영향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도 중국에 생산시설을 구축하거나 원료를 수입하는 곳이 많다. 원료 가격 상승이 예상되면서 우리나라 제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대체 수단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공동취재 권동준, 유근일, 정용철, 정치연, 한주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