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이하 협의회)가 105일 활동을 종료했다. 협의회는 통신비 인하 방안에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지만, 핵심인 보편요금제와 관련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이해관계자 찬반 의견을 확인했다.
협의회는 그간의 논의 내용을 정리,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통신비 문제에 대한 경쟁 활성화 방안을 포함한 원점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견된 실패
협의회 시작단계부터 이해관계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이 부족했다.
협의회는 △단말기완전자급제 △보편요금제 △기초연금수급자 요금감면 △기본료 폐지 의제를 제시했다. 모든 의제가 직접적 통신비 인하와 규제 위주 방안이다.
요금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 활성화, 혁신 요금제 활성화, 요금 구조개편 등 논의는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회가 제시한 의제 위주로 진행되며 이통사와 유관협회 등은 의제 설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애초에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105일이라는 활동기간 9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의제를 소화하기도 무리였다.
이해관계자는 개념과 데이터에 대해 기본 동의조차 없는 상태에서 논의를 전개했다.
이통사와 전문가는 통신서비스 필수재 성격부터 규정하자고 했지만 시민단체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 서비스 전체가 필수재라는 인식 하에 보편요금제를 통한 직접인하를 주장했다.
글로벌 통신비 비교 데이터를 검증하고 논쟁하는데 회의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전망은
협의회는 최대 쟁점인 보편요금제와 관련해 저가 요금제 등 통신비 인하가 필요하다는데 일부 공감했지만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찬·반 양론을 정리해 국회에 전달하지만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보편요금제 찬성 의견도 있지만 당이 통신비 인하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주도하기보다 문재인 정부 공약 이행을 위해 무리한 정책을 떠넘겼다는 인식이 만만치 않다.
야당은 소극적이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일방적 통신비 논의에 들러리 서지 않겠다며 야당 몫으로 배정된 통신비 위원도 추천하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역시 시장경쟁 활성화를 통한 통신비 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협의회 논의 결과와 별개로 6월 보편요금제 관련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뚜렷한 찬·반 논쟁보다는 6월 지방선거 일정 등으로 논의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협의회는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해서는 법제화는 어렵지만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일정부분 성과를 얻었다.
자급제 전용단말기 출시, 유심전용요금제, 온라인가입자 추가할인, 유통망 리베이트 제한 등이 자급제 활성화 부분 대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갤럭시S9 자급제 전용폰 출시 의사를 밝힌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의제에 대해서는 적극적 의견을 밝히는 이통사가 없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요구됐다.
기초연금 수급자 요금감면은 유일하게 합의가 이뤄졌다. 과기정통부는 이통사가 보완책으로 요구한 전파사용료 감면 등 조치와 관련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협의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과제는
협의회는 통신비를 인하할 당사자인 이통사 동의가 없다면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통신비 인하 정책 추진 과정과 방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전까지 과기정통부가 추진해온 대로 가계통신비 경감 정책 초점을 규제 강화와 통신비 직접 인하가 아닌 경쟁 활성화에 맞춰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하다.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혁신상품 출시경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현행 요금인가 또는 사전신고제 규제를 사후신고제로 대체하는 것도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소매 시장에 대한 직접 요금규제 대신 도매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을 유발하는 일도 대안 중 하나다.
알뜰폰 지원 정책으로 롱텀에벌루션(LTE) 도매 대가 협상 지원에 더해 알뜰폰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도록 근본 방안을 강구하는 일도 과제다.
건실한 사업자가 등장하면 제4 이통이 안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시장 참여를 유도하도록 지원 정책을 미리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본료 폐지와 같은 일방적 통신비 인하 정책에서 벗어나 통신 산업과 소비자 후생 등 생태계 전반을 고려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이전까지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살펴보면 통신산업 활성화를 통한 소비자 후생증대라는 가치를 연결해 논의를 진행해 오다가 후생증대 측면만 강조하게 됐다”면서 “통신정책 기본목표를 명확히 하고 실질적으로 목표 달성을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 jis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