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다·리플에 내 돈좀 묻어줘"...가상화폐 대리투자 기승

정부가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해 신규 가상계좌를 모두 막자, 대리투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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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이미 계좌가 있는 지인이나 친구, 연인 등의 기존 계좌를 활용해 우회 투자를 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거래소들이 계좌에 다른 사람 명의로 돈을 보내도, 입금처리 하지 않고 돈을 되돌려주면서 수주일 간 '돈이 묶이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존 계좌가 있는 지인 등을 통해 대리투자 하려는 사례가 급증했다. 문제는 지인 등의 계좌로 돈을 입금해도 실명(본인) 입금이 아니면 입금처리가 되지 않아 많게는 수십억 원 돈이 거래소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최근 직장인 A씨는 가상화폐 거래소 계좌를 보유한 B씨에게 800만원의 자금을 이체했다. 신규 계좌를 막자 대리 투자를 위해 B씨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

B씨는 자신의 기업은행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이는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일종의 가상계좌였다. A씨는 돈을 입금했고, B씨는 돈이 들어온 줄 알고, 800만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매수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해당 거래소에서 본인확인 여부를 묻는 링크를 보내왔고, 실명거래가 아니라며 입금을 거부했다. 하지만, 800만원의 돈은 며칠이 지나도록 다시 A씨 계좌로 반환되지 않았다. 거래소에 문의했지만 연결 자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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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투자가 횡행하자,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가 실명 입금이 아니면 입금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공지했다.

업비트 등 일부 거래소는 이 같은 상황이 급증하자, 별도 공지를 띄웠다.

'원화 입금 시 실명 입금이 아니면 입금처리가 되지 않고, 입금자명을 변경해서 입금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공지였다. 입금처리에 최소 수일에서 수주가 소요될 수 있다고 명기했다.

A씨는 800만원의 돈을 지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실명제 위반소지가 있어 해당 거래소에 대놓고 항의도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가상계좌 추가 차단을 추진했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지인 계좌로 투자하면 되겠지 하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상화폐 '계'도 횡행한다.

친구들이 돈을 걷어 가상화폐 거래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대리 투자해 차익을 나눠 갖자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가격이 일부 급락하면서 손해가 발생하자 주먹다짐까지 발생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서울 소재 직장인 A씨는 최근 사귄 남자친구에게 가상화폐에 같이 투자하자는 권유를 받고 수백만 원을 입금했다. 가격은 급등했고. 남자친구는 결별을 선언했다.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가상화폐 가치가 떨어져 원금을 다 날렸다는 말만 들었다. 법적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가상화폐 관련 법적 제도 등이 갖춰지지 않아 피해만 떠안았다.

정부의 가상화폐 투기 근절 대책이 오히려 대리투자 등으로 변질되는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인 등의 돈으로 투자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투자 한도 등에 대한 정확한 법적 제도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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