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121>“창조는 익숙함과 결별” 최진석 건명원 원장(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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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원장은 “창조는 익숙함과 결별이자 탐험과 모험의 결과”라며 “익숙함과 결별하는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모험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최진석 건명원 원장(서강대 철학과 교수)은 시대의 반역자를 꿈꾸는 청년들의 창조(創造) 멘토다. 훈고(訓誥)의 삶으로는 지도자, 일류 국가, 선도국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 원장을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하상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를 새해 첫 번째 인터뷰 상대로 정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창조 인재상이 궁금해서다. 그는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샜다. 별명이 최도사다. 인터뷰는 그가 다기에서 우려낸 경주 황차를 마시며 2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최 원장은 “창조는 익숙함과의 결별이자 탐험과 모험의 결과”라면서 “스마트폰은 기존의 전화에 대한 반역으로, 익숙함과 결별하는 의지와 용기가 없었다면 창조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 원장은 “선진국은 선진국 수준을 유지하는 시선의 높이가 있다”면서 “시선 높이가 생각 높이이자 삶과 국가 높이”라고 강조했다.

-녹차를 좋아하는가.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잘 못 이룬다. 이 차는 경주에 사는 독자가 보내 준 황차다.

-별명이 최도사라고 하던데.

▲중국의 도교사원을 도관(道觀)이라고 한다. 남자는 도사 또는 진인, 여자는 여관이나 여진이라고 일컫는다. 흔히 도사라고 하면 도술을 부리는 걸로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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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익숙함과 결별해야 한다. 창조하는 인재는 언제나 그랬다. 창조는 과거를 뒤집어서 얻는 일이다. 스마트폰은 기존의 전화기에 대한 반역이다. 성숙은 불편을 자초하는 일이다. 수행이나 수련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횡단보도에선 차가 오지 않지만 기다려야 한다. 담배꽁초를 안 버리는 일은 불편하다. 성숙한 사회는 불편함을 자초한 사람들의 놀이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미래형 인재는 어떤 인물인가.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 인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인재는 언제나 인재다. 미래 도전 의식이 있고 새로움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다. 이질성의 존재 안에서 동질성을 발견해서 연결해 내는 은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시대건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창조력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상이나 기술을 외부에서 수용해 발전시켰다. 그렇게 중진국 상위 수준에 올랐다. 보통 선례나 벤치마킹 같은 방식이다. 이런 익숙한 방식은 쉽고 편하지만 이제는 최고점을 찍었다. 다음 단계는 선도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선도 능력을 갖추려면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 창의력이 만든 결과가 선진국이다. 창의력은 경계선이 있다. 경계선을 올라서면 번영하고 못하면 후퇴한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인재들이 많아야 선도 능력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철학 수입국이 된 이유는.

▲철학은 보편 이론을 들여와서 그 시대에 적용하는 게 아니다. 그 사회의 특수한 문제를 보편 문제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플라톤, 칸트,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 사회에 적용하는 게 아니다. 자기 문제를 철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따라 하기로 했다. 남을 따라 하는 삶은 훈고의 삶이다. 지식 수입국은 일류나 선도 국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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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력을 갖춘 인물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늘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기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꿈을 수행하는 사람인가 내 꿈을 꾸는 사람인가다. 내 길을 제대로 걷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이미 정해진 기준대로 세상을 보는가, 내가 정한 기준으로 태초의 길을 걷는가를 추궁해야 한다. 창조자는 오지 않는 문법에 담긴 내용을 먼저 보고 반응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죽을 고비에 처했다는 건 처음으로 자신을 봤다는 이야기다. 자기를 죽음 앞에 세우면 자신이 가장 잘 보인다.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사람이 창조자이고 지도자이며 지배자다.

-선진국과 후진국 간 사유의 차이는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선진국은 선진국 수준을 유지하는 시선의 높이가 있다. 시선의 높이와 사는 방식 차이다. 지금까지 서양이 선진국 주도권을 잡았다. 과학기술, 문명, 지식에서 앞섰다. 동양은 수입국이었다. 지식, 과학기술, 생각, 철학 등 이 모든 것은 모험과 탐험의 결과다. 위대한 인류 탐험가 가운데에는 동양인이 없다. 서양은 탐험가가 직업으로 존재했다. 모험심이 강해서 지식과 이론을 생산했다. 동양은 모험심이 약했다. 창의성은 모험이다. 질문도 모험이다. 선도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모험심을 품어야 한다. 모험심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기존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고독한 존재가 돼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나 위대한 일은 한계를 극복한 결과다. 나약한 존재는 강자가 되지 못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금강석(金剛石)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 하지도 않고 왜 남을 탓을 하는가. 모든 건 다 자신 탓이다. 탓을 습관화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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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인이 되려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자기가 희망하는 일, 좋아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남들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겠는가.

▲지금 같으면 나오기 어려운 토양이다. 그런 인물이 나오려면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부모가 자랑하기 좋은 자식으로 기르려고 한다. 서양은 가정에서 독립된 행복한 자식으로 기른다. 학벌이나 성적을 따지는 사회는 자신감이 약해서 모험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수차 혁신을 강조하지만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나부터 혁신해야 한다. 연구만 하고 혁신은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멘토를 죽이라고 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라는 의미다. 불교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지 않는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그 책에는 저자의 길이 있을 뿐이다. 독자의 길이 아니다. 저자의 길을 엿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 길을 엿보고 내 길을 만드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다. 멘토를 죽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멘토가 시키는 대로 하면 멘토의 길밖에 안 된다. 멘토에게서는 힌트를 얻고 내 길을 가야 한다.

-건명원은 어떤 곳인가.

▲건명원(建明苑)은 '밝은 빛을 세우는 들판'이란 의미다. 원(苑)자는 들판 원자다. 생각이 다른 젊은이들이 만나 마음껏 뛰놀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설립했다. 창조력을 발휘하고 도전하는 인재를 기르자는 게 목표다. 한 해 교육을 하면 시어(詩語) 구사 능력을 갖추게 된다. 3기 수료식에서 19명이 연시조를 작성하듯 글을 썼는데 뜻이 통했다. 이건 지식 문제가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태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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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가.

▲학문은 인간이 세계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매우 고효율적인 지적 체계다. 한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철학과 예술·과학 같이 대립하는 학문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가 나와야 한다. 창의력을 갖춘 리더를 키우는게 목표다. 인문, 과학, 예술 분야 석학 11명이 강의하고 있다.

-입학생을 만 19~29세로 제한한 이유는 뭔가.

▲처음에는 10대로 하려고 했는데 미성년자의 경우 관리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19~29세로 한 것이다. 오는 3월부터 성인반도 개설할 계획이다.

-입학생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가.

▲학력이나 스펙은 전혀 안 본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치른다. 시간도 딱 3시간이다. 에세이 문제를 내면 3시간 안에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인터넷으로 제출해야 한다. 남녀 구분 없이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는다. 1기 때는 경쟁률을 공개했지만 이후 미공개로 하고 있다. 모집 인원은 30명 안팎이다. 이들은 3월에 입학해서 12월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4시간 교육을 받는다. 다섯 차례 결석하면 퇴학이다. 3기 입학생이 38명인데 19명만 수료했다.

-건배사가 반역자라고 하던데.

▲그렇다. 옛날에 이런 소리를 했다간 교도소로 직행했을 것이다. 반역자란 이미 있는 모든 것과 결별하자는 의미다. 과거, 직업, 지식, 사회 시스템 등 모든 것을 버려야 새로움과 만날 수 있다. 오정택 건명원 이사장께서 입학식 때 “젊은이들을 반역자로 길러 달라”고 당부했다. 반역은 기존에 저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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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전공한 이유는.

▲처음에 칸트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유학 갈 생각이었다. 독일어도 공부했다. 어느 날 책장 아랫단에 있는 장자를 발견했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한 번에 다 읽었다. 재미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중국으로 유학 갔다. 즐거움을 준 책이 평생 학문이 됐다.

-좌우명과 취미는.

▲없다. 틀에 갇히기가 싫다. 취미도 없다. 그저 나는 나다.(웃음)

최진석 건명원 원장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중국 베이징대 대학원에서 도가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옌징연구소 방문학자와 캐나다 토론토대 방문교수를 거쳐 1998년부터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탁월한 사유의 시선' '생각하는 힘 노자' '경계에 흐르다' 등 다수다. 역서도 '장자철학' '중국사상 명강의' 등 여러 권이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은 중국에서 번역 출판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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