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플랫폼과 직접민주주의, 그리고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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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촛불혁명에 이어 응원봉 혁명이 진행 중이다. 대통령의 갑작스런 비상계엄선포는 잠자던 사람을 깨우는 각성제 역할을 했다. 실패로 끝난 계엄은 과거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됐다. 과거 언론이 철저히 통제됐던 것과 비교할 때, 이번 계엄은 사실상 전 과정이 다양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됐다. 그날 시민과 국회의원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이게 한 것은 책임의식과 더불어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을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 헌법의 제1의 선언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주권자 뜻에 따라 나라가 운영되는 체제다. 과거 왕정이나 귀족정에서 한 사람 또는 일부 특권 세력이 나라의 향방과 운명을 정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많은 국민의 의사가 나라에 정책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으로 변모했다. 현재도 소수자 권리 보장, 다양한 의견 수렴, 그리고 투명하고 공정한 정치 시스템 구축 등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채택한 대의민주주의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지역 주권자의 뜻을 반영해 의사결정을 한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권자 의견은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개인 가치관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대표자의 개인적 의사표시가 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양자간 괴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자와 주권자 간 의견 차이, 즉 대표성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인터넷 발달로 인해 다양한 여론조사 참여, 각종 미디어에 의견 표명 등 주권자가 대표자에게 의견을 전달할 기회, 국민 사이에 서로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늘어나게 됐다.

민의가 반영되는 기회가 늘어났다는 측면에서 고대 그리스와 같이 직접민주주의 실현에 플랫폼 또는 소셜미디어가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담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민들이 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 문제는 복잡다단하기에 국민 의견 총합만으로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동시에 전문가 또는 이들의 의견을 잘 정리하는 시스템도 필요할 것이다. 국민 개개인마다 개별 문제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다르고 또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포퓰리즘이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는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 개개인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며, 정제된 의견을 낼 수 있다면 보다 이상적인 형태를 기대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판단을 위한 정보와 논리를 보완할 수 있다면 그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각 개인의 능력을 지금의 대의기관들 정도 수준의 경험과 지적 사유를 통해 도출된 상태로 학습하고 도와주는 AI가 특정한 답변을 계속 내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특정 AI만을 사용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특정 AI가 제시하는 의견들이 국민 뜻으로 형성되는 생각하지 못한 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사회는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과 토론이 존재해야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사회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가 될 수 있다. AI가 다양한 사안 판단을 위한 정보, 논리 제공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하지만, 획일화된 AI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AI는 특정기업이나 국가에 의해에 개발되고 학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현재 세계는 AI 개발 전쟁 중이다. 혹자는 결국 미국의 수많은 AI 중 하나가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고 미·중 AI 패권전쟁 속에서 결국 정치적인 고려를 포함해 양분하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결국 특정기업이나 국가가 만든 AI 중 하나를 써야 하는가. 이것은 경제나 안보 문제 외에도 위에서 말한 직접 민주주의 시대를 여는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즉,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AI가 미국이나 중국 입장에서 정보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면 그것이 우리 개인 의사나 국익과 상충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자국 상황을 반영하는 자국 AI 모델 확보는 민주주의 향후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수 불가결하다.

자국 AI 모델을 활용하면 자국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정확하고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할 뿐 아니라, 민감한 국내 데이터 유출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데이터 독점화가 진행되고 있고, 다른 국가는 해당 데이터에 접근하기 어려워 자체적인 AI 개발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하면, AI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편향된 결과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AI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 특히, 편향되지 않고 다양한 AI 도구의 활용과 더불어 개인의 디지털 리터러시와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 필요하다.

AI 활용도 중요하지만, 항상 다른 것에 의존하게 되면 인간 능력은 퇴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갈고 닦아야 AI 시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곧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환경에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리터러시 등 AI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국 AI 모델 확보를 위한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 가톨릭대학교에서 조직상담학 석사를 취득했다.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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