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도시계획가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발명품이다. 그는 산업화로 인한 파리의 혼잡과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도시 빈민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고밀도 고층주거지에 가로로 긴 창과 공중정원이 있고, 필로티(pilotis) 구조로 대지를 활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설계했는데, 아파트가 그 설계의 산물이었다.
2차대전 이후 그는 1600명이 거주할 수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을 설계했다. 상가와 편의 시설이 있고, 옥상에는 체육시설과 유치원까지 갖춘 현대 아파트의 효시다.
2017년 영국 로이즈 보험사와 케임브리지대학이 공동 연구•발표한 세계 주요 도시의 재해위험도 연구결과인 ‘도시 위험지표(City Risk Index)’에 따르면 전세계 301개 도시 가운데 우리나라 서울시의 도시 위험도가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사는, 르 코르뷔지에의 고층 공동주택 건축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서울은 그 편리함의 대가로 동경과 타이페이처럼 도시의 각종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활동하는 공간이자 시설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 재난은 발생 가능성, 규모, 발생 후 전개과정과 피해 정도가 불확실하다. 또 재난 당시와 재난 발생 후 관계 기관 간 ‘관계의 복잡성’, 오랜 시간 누적된 위험요인들이 특별한 시점에서 표출되는 ‘재난의 누적성’, 재난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 차이 등의 속성이 있다.
이중 ‘재난의 누적성’은 데이터 분석 등으로 사전에 전조규칙(前兆規則)을 개발해 재난을 예방하거나 발생 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많이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도 ‘재난의 누적성’을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예다.
하인리히 법칙은 1920년대 미국의 트래블러스 보험회사 관리감독관이었던 하인리히가 사고를 분석하던 중 노동재해 발생 과정에서 한 명의 중상자가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잠재적 상해자가 300여 명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데서 유래했다. '1 : 29 : 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과거에는 인간의 직관과 경험에 의존해 재해를 관찰하고 대책을 세웠지만, 이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 시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IBM은 도시의 재난문제를 ‘데이터 중심의 지능형 솔루션’을 활용해 선구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2013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시 홍수피해 대책은 센서와 기상 등 빅데이터 분석, 자동경보 등을 활용해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한 사례다.
우리나라는 어떨 까. 2015년 발생한 ‘서해대교 화재사건’을 되짚어보며 미래 스마트시티의 재난 통제와 대책을 제시해 본다. 서해대교 화재사건은 낙뢰로 인해 다리 상판과 주탑을 연결하는 와이어에 불이 붙은 것을 도로공사 안전 센터직원이 순찰 중 우연히 발견한 후 신고를 해 출동한 평택소방대원이 신속하게 진화하며 차량통행을 통제해 대형참사를 막은 사건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붕괴사고의 사상자가 49명인 것을 생각하면 서해대교 화재도 피해 규모가 상당했을 수 있었다. 사건의 수습과정을 되짚어 보면 우려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낙뢰로 화재가 난 지점은 높이가 180m나 되는 주탑의 와이어였다. 짙은 안개가 자주 끼는 서해대교의 상황을 고려하면 순찰 중에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직원이 발견한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순찰 직원이 화재를 늦게 발견하였다면, 높은 지점에서 난 화재로 소방대원이 조기 진화에 실패했다면, 서해대교 관리소에서 와이어 훼손 정도에 대한 판단과 차량통제를 신속하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큰 사고를 막긴 했지만, 사건 당일 현장에서는 제한적 전조감지, 사람의 경험과 직관에 의한 점검과 피해복구, 방송을 통한 일괄경보 등 과거 허점이 많이 노출됐던 경험기반의 재난관리가 이뤄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데이터 중심 분석기반의 의사결정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 까. 일단 서해대교의 케이블과 주요시설에 화재나 붕괴 등 사고를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돼 24시간 도로공사 안전센터로 관련 데이터를 사물인터넷(IoT) 전용망을 통해 송신한다(많은 순찰자가 있더라도 7km 이상 되는 대교를 24시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서해대교나 유사한 공법으로 지은 대교의 과거 재해기록, 기상청, 소방서 등 많은 관계기관의 실시간 정보, 실시간 SNS, 뉴스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발견한 ‘전조규칙’을 미리 프로파일링하고 실시간으로 전조를 감지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분석과 판단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맞춤형 조기경보로 피해를 예방하고, 재난이 일어나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서울시에서 최근 공개한 ‘디지털 시민 시장실’은 앞으로 4차산업 기술이 재난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 수 있는지 보여준다. 화재가 발생하면 전자상황판(데시보드)위의 지도에 빨간색으로 위치가 뜬다. 스크린에서 ‘구조’ 아이콘을 터치하면 발생 일시, 주소, 처리기관, 출동상황을 확인하고 주변 CCTV를 통해 주변 상황도 실시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스크린상에서 현장 관련 담당자와 화상 전화를 연결해 자세한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4차산업과 관련된 IT기술을 활용해 재난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의사결정 지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최근의 디지털기술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기계학습과 심층학습을 통한 음성과 영상인식)은 사물인터넷 (IoT)기술과 함께 향후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난관리와 예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며 이 분야의 신 사업은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한규 수원시 제1 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