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갈 길 먼 벤처기업 확인제도 민간 이양

Photo Image

벤처기업 확인제도 개편 작업이 감감무소식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공백 기간이 길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핵심인 벤처 확인 권한 민간 이양도 기약이 없어 보인다. 민간 주도형 벤처 확인제도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 핵심 공약의 하나다.

26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벤처기업 확인제도 개편 대책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이 임명됐지만 대책 발표는 자칫 해를 넘길 전망이다.

중기부는 관계 기관과 협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에 나온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는 수준이다.

◇벤처 확인제도 개편

지금까지 확정된 개편 내용은 △벤처기업 확인 권한 민간 이양 △대출·보증 실적에 근거한 관 중심의 벤처 확인 유형 폐지 △벤처 투자와 연구개발(R&D) 유형 확대 △신기술 성장 유형 신설 △벤처기업 유효 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이다.

정부가 밝힌 벤처기업 확인제도의 핵심은 벤처 확인을 민간이 주도하는 기술 중심 제도로 전환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벤처기업 확인제도는 기술보증기금을 비롯해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등이 담당했다. 관 중심 확인제도가 민간 주도로 바뀌지만 자세한 역할 분담은 정해지지 않았다.

기술보증기금이 주도해 온 대출·보증 실적에 근거한 벤처 확인 유형은 폐지되고 신기술 성장 유형이 신설된다. 혁신성과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 집중 지원받을 수 있도록 선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2006년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당시 법 개정으로 대출·보증 확인 유형이 신설되고, 신기술 관련 유형이 제외됐다.

민간 주도 벤처기업 확인은 3단계에 걸쳐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보를 포함한 분야별 전문 기관이 추천하고, 16~20개 전문 심사기관이 기술력과 R&D 및 투자 등을 평가한다. 최종 결정은 민간위원회가 맡는다. 민간위원회는 선배 벤처와 벤처캐피털에 종사하는 전문가로 구성된다. 민간위원 선임 방법, 벤처 확인 전문성과 신뢰성 등은 논란거리다.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대책에도 담기지 않는다.

벤처기업 유효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다. 벤처기업 확인 기간 연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벤처 확인과 유효 기간 갱신에 따른 수수료·수입 주체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벤처 업계 관계자는 “2006년 벤처 확인제도가 바뀌면서 혁신성이나 성장성 있는 기업보다 안정된 중소기업이 벤처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서 “민간 주도형 벤처 확인제도는 벤처 투자와 R&D 인정 범위를 넓히고 신기술 혁신성 및 사업성 조화, 글로벌 경쟁력 등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벤처 양산 언제까지

개편 작업 지연으로 벤처 실효성 문제가 다시 거론된다. 벤처 확인이 대출과 보증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무늬만 벤처를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2016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3만1100여 벤처기업 가운데 74.9%가 수출 경험이 없다. 98%는 투자 유치를 받아보지 못했다. 벤처 4곳 중 3곳은 글로벌 경쟁력이 없고, 벤처 대부분은 투자자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벤처가 경쟁력을 상실한 데는 기술평가보증·대출 중심 벤처 확인제도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재무 안정성은 증대됐지만 벤처 속성인 혁신성, 기술성, 성장성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기술보증기금이 기술평가 보증·대출 기업을 벤처기업으로 확인해 주면서 혁신성이나 기술력보다는 재무 상태가 안정된 기업이 벤처에 이름을 올렸다. 22일 기준 기술평가보증 78.48%, 기술평가 대출이 11.82%로 90%가 넘는다. 반면에 R&D는 5.83%, 벤처투자는 3.63%에 불과하다.

벤처 관계자는 “벤처기업 확인제도가 기술평가보증 중심으로 바뀌면서 10년 넘게 창업초기 혁신 기업이 외면당했다”면서 “내실 발전보다는 외형 확대에 치중된 벤처 확인 제도로 벤처기업의 차별성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벤처 확인제도 개편 지연 불가피

정부가 올해 안에 대책을 마련해도 갈 길은 멀다. 대책 자체가 해법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책에서는 핵심인 벤처기업 확인 주체를 정하지 않는다. 민간위원회라는 최종 결정 기구를 구성한다는 큰 틀은 있어도 이를 구성하는 전문가를 뽑는 방법, 확인 수수료 등은 제외된다. 의견 수렴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책 발표 후 업계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벤처 업계에서도 정부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관련법도 개정해야 한다. 조성 방안에 나오는 벤처기업 확인 권한과 유형 폐지·신설, 벤처기업 유효 기간 연장 모두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안 마련부터 법안 발의, 법제처 심사, 국회 제출과 의결 등 개정 절차가 산적해 있다. 대체로 법 개정에만 5~7개월이 걸린다. 내년 1월 시행은 물리력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국회를 한 번에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벤처기업 확인제도 대책마저 해를 넘기는 건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면서 “가능한 한 올해 안에 발표되도록 관련 기관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창선 성장기업부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