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E가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화웨이에 공급한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가 플렉시블 OLED를 만들어 완제품 업체에 공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마침내 OLED 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국내 OLED 업계가 정부의 기술 유출 우려로 투자에 제동이 걸린 사이 중국은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시작했다. 한국 OLED 업계가 빠른 투자로 기술과 생산량에서 격차를 벌이지 않으면 따라잡힐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BOE는 중국 청두에 위치한 공장(B7)에서 이달 말 플렉시블 OLED를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조에 필요한 부품·소재가 이미 공급됐으며, 5.5인치 플렉시블 OLED를 시작으로 11월에는 5.99인치를 생산할 계획이다. 규모는 월 1만대 수준으로 파악됐다. 수율이 높지 않아 생산량이 적은 편이지만 이번 OLED는 화웨이에 납품된다.
화웨이는 중국 1위, 세계 3위인 스마트폰 제조사다.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달부터 생산되는 BOE OLED를 자사 스마트폰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중국에서 플렉시블 OLED를 생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BOE는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투자에 적극 나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이 됐다. BOE는 이번 화웨이 공급으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플렉시블 OLED 시장에도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BOE는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에 플렉시블 OLED를 공급하면서 기술과 품질에서 대외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플렉시블 OLED는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이 선도한 분야다. 시장조사 업체인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2분기 기준 세계 플렉시블 OLED 시장에서 98.3%를 점유했다. LG디스플레이도 10조원 투자에 착수하는 등 플렉시블 OLED 사업을 본격화했다.
국내 기업이 사실상 독주하던 시장에 중국이 가세하면서 시장 경쟁은 심화되고 한국 산업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로 화웨이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OLED를 공급 받아 스마트폰을 제조했지만 이번에 BOE 제품을 택했다. 심지어 BOE가 만드는 5.5인치 플렉시블 OLED는 디스플레이 양쪽 끝이 구부러진 곡면 형태로 알려졌다. 곡면 OLED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표 상품일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플래그십 모델의 특징이었다. 또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플렉시블 OLED를 독점 공급 받는 애플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BOE와 협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OLED는 우리 기업이 선도, 중국과 3~5년 정도 기술 격차를 벌려 왔다. 그러나 BOE의 플렉시블 OLED 양산으로 더 이상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수율과 양산 측면에서 아직은 격차가 있겠지만 BOE가 OLED에 첫발을 뗐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면서 “중국의 추격이 현실화된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BOE는 플렉시블 OLED 출하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OLED 위협은 현실화되고 있지만 국내 산업계는 후발 주자를 따돌리기 위한 투자도 제때 하지 못해 우려된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에 8세대 OLED 공장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중국 진출에 부정 입장을 보이면서 제동이 걸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 간담회에서 중국 진출을 재검토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 LG디스플레이가 신청한 중국 투자 승인 요청을 두 달이 지나도록 결정하지 않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중국 투자는 TV에 사용되는 대형 OLED 디스플레이 관련 내용이지만 이 회사는 대형에서 사업 기반을 다져야 중소형인 플렉시블 OLED 사업을 강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쉽게 쫓아오기 어렵고 기술 난도가 높은 OLED에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가 있다”면서 “대형 OLED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렉시블 OLED 시장 전망(단위:억달러)>
(출처: IHS마킷)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