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차기 전략 스마트폰에 차세대 메인기판인 SLP의 탑재를 추진하면서 국내 인쇄회로기판(PCB) 업계가 대규모 시설 투자에 나섰다.
SLP는 현재 스마트폰 메인기판으로 많이 쓰이는 고밀도다층기판(HDI)이 발전된 제품이다. 기존의 HDI에 반도체 패키지 기술을 접목시켜 면적과 폭을 줄이고 층수를 높여 작은 크기에도 고성능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졌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 코리아써키트, 대덕GDS, 이수페타시스(이수엑사보드)가 삼성전자의 차기 전략 스마트폰에 SLP 공급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이들 4개사는 총 2000억원에 이르는 투자액을 확정, 설비 구매에 착수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각사의 투자 규모를 보면 삼성전기가 가장 많은 1100억원을 책정했다. 뒤를 이어 코리아써키트가 약 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덕GDS와 이수페타시스는 각각 200억원, 165억원을 집행한다. 일부 투자는 이뤄졌다. SLP 양산이 내년 초로 예정된 만큼 연내에는 양산 라인을 갖추는데 모두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마트폰에는 공간 활용도 극대화 기술 도입이 한창이다. 배터리 용량을 늘려서 스마트폰을 오래 쓸 수 있게 하면서도 고성능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곧 스마트폰 메인기판을 더 작게 만들면서 고성능 부품을 실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SLP라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SLP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지난해부터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 스마트폰 탑재를 위해 SLP를 개발, 생산할 수 있는 곳을 찾는 한편 협력 방안을 강구했다. 그 결과가 삼성전기, 코리아써키트, 대덕GDS, 이수페타시스의 설비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 기업이 투자 규모를 확정하고 집행에 나선 것은 SLP 도입이 이제 기획 단계를 넘어 실행 단계로 진입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PCB 업체 관계자는 “SLP는 반도체 기술이 접목된 새로운 제품이기 때문에 인력을 충원하는 등 그동안 준비해 왔다”면서 “연내 시험 가동을 마쳐 내년 초 양산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SLP는 HDI가 발전된 형태여서 기존의 HDI 생산 라인을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 도중에 일부 설비를 교체하거나 추가하면 SLP를 생산할 수 있다.
삼성의 SLP 채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업계에 미칠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연간 4억대를 판매하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다. 이 회사의 신기술 도입과 전략 변화는 기존의 부품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다. SLP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은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신증권은 삼성전자 메인기판 공급업체가 12개에서 SLP를 적용한 모델 기준 5개 이내로 축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자사 AP '엑시노스'를 사용한 갤럭시S9 모델부터 SLP를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차이가 있어 퀄컴 AP 사용 모델에는 HDI가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흐름상 SLP는 초기 도입 단계가 지나면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