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 비중이 글로벌 업계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이 매출의 약 15%를 R&D에 재투자하는 반면에 우리 기업은 매출 대비 2.9%에 그쳤다.
혁신 장비를 해외 기업보다 한발 앞서 내놓고 대기업 종속 모델에서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R&D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 정부도 4차 산업혁명의 씨앗 산업으로 불리는 장비업계에 대한 투자 확대에 관심을 기울여서 인센티브 정책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기사 5면>
2일 전자신문이 글로벌 톱5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ASML,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KLA-덴코가 본사 소재의 각국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2016 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업체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평균 15.6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 톱5의 R&D 투자비 비중 평균(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은 2.9%에 그쳤다.
매출 차이가 크기 때문에 국내 업체의 절대 R&D 투자액은 글로벌 기업보다 훨씬 적은 규모다. 매출 대비 투자액 비중도 이처럼 낮다면 추월은 고사하고 추격 자체도 어렵다.
주력 장비군으로 구분해 보면 에스에프에이, AP시스템, 디엠에스 등 디스플레이 장비가 주력인 업체의 R&D 투자 비중이 1~2%대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도체의 전 공정 장비를 주로 다루는 업체는 비중이 높았지만 이 역시 해외 업체보다 턱없이 낮았다. 국내 매출액 상위 장비 업체 가운데 글로벌 평균보다 R&D 투자 비중이 높은 곳은 주성엔지니어링(15.79%)밖에 없었다. 유진테크(13.9%), 원익IPS(12.72%) 정도가 10% 비중을 웃돌았다.
국내에서도 연간 매출액 1조원을 웃도는 장비 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처럼 R&D를 게을리 하면 단순 `국산화` 사업 모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산화는 반도체 소자나 디스플레이 패널 고객사가 해외 장비 업체와 가격을 협상할 때 좋은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장비 업계 입장에서는 그 이상을 바라보기 힘들다. 이익률이 박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한두 곳에 목을 매는 `종속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바로 이 탓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은 삼성전자, 인텔, TSMC 등에 자기 주식을 내주면서까지 악착같이 R&D 비용을 마련했다”면서 “R&D가 곧 좋은 종자를 심는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펼치는 것은 글로벌 장비 업계의 공통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세메스는 최근 AMAT, TEL 등이 개발조차 하지 못한 초임계 방식의 혁신 세정건조 장비를 상용화했다. 혁신 장비를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국내 장비 산업계의 쾌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내 업계 전반으로 이처럼 R&D 투자 비중이 낮다면 제2, 제3 혁신 선도형 장비는 나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장비 산업도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장비 업체 AMEC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뜨는 기업`에 속한다. 인력 대부분이 AMAT 출신으로, 3분의 1이 R&D에 매달리고 있다. 중국이 강력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장비 산업계의 R&D를 독려할 수 있는 개선된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직간접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