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승온 소재로 적합 가전 등 쓰임새 많아 사업화 채비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전자부품연구원(KETI). 최근 이 곳을 찾는 자동차 업계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거의 매일 업체와 미팅이 이어져 취재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KETI가 러브콜을 받는 건 김윤진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면상발열체` 때문이다. 발열체란 열을 발생하는 물체다. 면 상태에서 열을 내는 것을 면상발열체로 분류한다.
면상발열체는 이미 전기매트나 히터 등에 적용되고 있지만 KETI 기술이 주목을 받는 건 남다른 데 있다. 이 발열체는 4볼트(V) 이하 낮은 전압으로 250도까지 온도를 끌어올리는 데 10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KETI의 것과 소재가 같은 기존 카본 발열체 대비 10배 이상 빠른 속도다. 적은 전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고온을 발생시키는 점이 바로 자동차 회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세대 자동차로 떠오르는 전기차에는 내연기관이 없어 폐열을 활용한 난방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전력을 이용한 발열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전기차에서 배터리 용량은 한정돼 있다. 배터리를 이용한 난방은 전기차 주행거리 감소로 이어진다. 고효율 히터 수요, 즉 새로운 발열체 기술에 관심이 큰 이유다.
배터리는 영하의 기온에서 성능이 급감한다. 빠르게 방전되면 시동조차 걸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전기차에 있어 치명적 단점인 셈이다. 얼어 있는 배터리를 짧은 시간 내 녹이려면 급속 승온(온도 상승)할 수 있는 물체가 필요한데, 면상발열체가 배터리를 감싸고 있으면 된다. 기존 배터리 히터 대비 부피도 작아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세계적 자동차 업체인 독일 BMW는 이런 면상발열체 가능성을 알아보고 지난 2015년 10월 KETI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KETI 면상발열체 기술을 BMW 전기차 곳곳에 접목하기 위해서다. 성과가 만족스러워 BMW는 협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의미로 최근 KETI에 자사 전기차를 기증하기도 했다.

면상발열체를 개발한 김윤진 박사는 “배터리 히터나 스티어링 휠, 카시트 등 자동차 내 난방공조와 관련된 곳에 상용화하려는데 자동차 관련 기업의 관심이 큰 것 같다”며 “일부는 진행이 빨라 상용 제품이 연내 출시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면상발열체는 전기차 외에도 쓰임새가 많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영하 40도 저온에서 300도 고온까지 사용이 가능해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히터, 전기매트 등과 같은 생활가전은 물론 고고도 드론, 아웃도어, 의료, 선박 등 극한작업용 제품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박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 많아 당초 예상보다 적용 분야가 다양해질 것 같다”고 전했다.
KETI는 면상발열체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중견 기업과 손잡고 대량 생산을 준비 중이다. 해당 업체는 KETI에서 기술을 이전 받아 신규 사업에 진출할 계획으로, 세계 시장을 향한 새로운 협력 모델 탄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