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대기업들이 정말 생태계 조성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후방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생태계 조성 의지를 느끼기 힘듭니다.”
최근 디스플레이 세미나에 참석한 청중의 발언이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소재, 부품, 장비 등에 걸친 후방 기업의 아이디어와 신기술이 더 중요해졌다는 패널 제조사의 발표에 대한 답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기대하는 전방 기업과 실제 후방 기업이 느끼는 격차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한 장비 기업 대표로부터 약 2010년께 정부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함께 추진한 `장비 교차구매`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가 소수 특정 협력사들의 장비만 구매하면서 경쟁사에 판매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는데 이런 제한을 해제해 국내 장비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끔 유도하기 위한 취지였다.
이 대표는 “주요 제품과 기술 정보를 공유했지만 경쟁사에 정보만 넘겨 준 결과만 됐다”고 회상했다. 회의 테이블에 앉은 전방 기업들이 처음부터 교차구매 의지가 미약했고, 여전히 경쟁사에 자사 기술과 전략이 흘러들어 갈까 봐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이해는 된다. 이들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글로벌 라이벌이다. 당연히 주요 기술 정보와 사업 전략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보안에 신경 쓴다. 그러나 어플라이드머트리얼,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장비 기업들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기업에 장비를 판매한다.
전문가들은 OLED 시대로 넘어오면서 생태계 폭이 더 좁아지고 장벽은 더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LCD보다 공정이 짧아졌고, 패널 제조사 고유의 기술 노하우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OLED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후방 산업과 기업이 성장하려면 전방 기업의 강력한 협업 의지가 절대 필요하다. 좋은 기술을 만들고도 실제 라인에서 테스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 패권을 한국에 넘겼지만 후방 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