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기초과학연구계가 4세대 ECR이온원 개발 경쟁을 시작했다.
`ECR(전자 사이클로트론 공명)이온원`은 대전류, 다가(하전수가 높은) 이온을 고효율로 추출할 수 있는 첨단 장치다. 주로 대형 가속기 이온 공급원, 신소재 성능 향상을 위한 장비 등에 사용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등 국내외 ECR이온원 연구개발(R&D) 기관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 주요 가속기 선진국이 올해 들어 4세대 ECR이온원 R&D에 앞다퉈 나섰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미국 국립로런스바클리연구소(LBNL)다. 3세대 ECR이온원을 처음 개발한 이곳은 올해 초 대형 중이온가속기에 적용할 4세대 ECR이온원 개발에 착수했다. 기초과학 연구 과정에서 좀 더 높은 빔 전류와 다가 이온을 필요로 하는 미국 기초과학계의 요구가 거셌다.
NBNL은 4세대 ERC이온원 개발로 빅뱅을 비롯한 우주 기원 연구와 신물질 발견 등 기초과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최근 중이온을 더욱 효과 높게 추출할 수 있는 대형 가속기용 ECR이온원 개발 계획을 내놨다.
중국은 차세대 ECR이온원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3세대 개발 과정을 뛰어넘어 곧바로 4세대 ECR이온원 디자인 설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4세대 설계를 시작했다.
4세대 ECR이온원은 고자기장을 인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초전도자석을 뛰어넘는 새로운 초전도 선재가 필요하다. 기존 3세대에 사용된 초전도 선재 NbTi(니오브타이타늄)는 4세대에 필요한 10T(테슬라) 이상의 고자기장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세대 개발에 나선 선진국은 신소재 초전도체 니오브주석(Nb3Sn) 등 10T 이상의 고자기장 인출이 가능한 특화 선재 개발을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ECR이온원은 사용하는 마이크로파 주파수와 자석으로 세대를 구분한다. 1세대는 1980년대에 나온 5~10㎓ 주파수 사용 이온원이다. 영구자석이나 전자석으로 만든다.
2세대는 이후 개발된 10~20㎓ 주파수대 이온원이다. 영구자석과 전자석에 초전도자석까지 하나 또는 조합 형태로 만든다. 1세대에 비해 안정되게 빔을 인출할 수 있어 다양한 가속기에 적용됐다. 현재 가장 대중화된 ECR이온원이다.
3세대는 20~30㎓ 주파수를 사용하는 최신 이온원이다. 일부분 영구자석을 사용하지만 대부분 값비싼 초전도자석을 사용해 만든다. 2004년 LBNL이 처음 개발했다. KBSI와 일본이 뒤이어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 등 후발 주자도 개발하고 있다.
4세대는 40㎓ 이상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차세대 ECR이온원이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56㎓ 주파수까지 사용 가능한 장치 개발을 목표로 잡고 있다. 높은 주파수의 ECR이온원일수록 다가의 중이온(무거운 원소의 이온)을 좀 더 효과 높게 추출할 수 있고, 다가의 중이온을 가속기로 가속하면 더 큰 에너지를 뿜어내 빅뱅에 가까운 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KBSI와 국가핵융합연구소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닷새 동안 부산해운대 한화리조트에서 `제22회 ECR이온원 국제 워크숍`을 개최한다. 세계 15개국 100여명의 ECR이온원 연구자들이 참석한다.
ECR이온원 국제워크숍은 전 세계 ECR이온원 연구자들이 2년마다 모여 최신 연구 동향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지난 워크숍은 러시아에서 열렸다. 이때 KBSI가 차기 워크숍 한국 유치에 성공했다.
이번 워크숍 의장을 맡은 원미숙 KBSI 부산센터 소장은 “ECR이온원은 플라즈마, 초전도, 마이크로파, 진공, 초고전압, 초정밀 가공 등 현대 첨단 과학기술 총체가 구현된 가속기 분야 핵심 요소 기술”이라면서 “기초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ECR이온원과 차세대 이온원 개발 경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