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5> 정주영 회장, 현대전자 대표로 반도체 사업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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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전자사업 기술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IBM 을 방문한 고 정주영 현대 회장

삼성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위해 조사를 벌이던 1981년. 당시 정부 전자공업 진흥업무를 담당한 송태욱 씨는 정주영 현대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마쓰시타 고노스케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회장과 전두환 대통령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마쓰시타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해 보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대통령도 이 권유에 힘을 보탰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큰 것뿐만 아니라 작은 것에서도 삼성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 회장은 한국반도체(삼성반도체 전신) 설립자인 강기동 박사를 떠올렸다. 강 박사라면 현대에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1982년 8월 이현태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강 박사와 만나 반도체 사업 진출에 관한 조사용역 계약을 체결한다.

강 박사는 “한국반도체를 시작할 197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회로나 설비 모두가 고도화돼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고, 제품이 제대로 나와도 고객사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흑자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현태 실장은 “현대는 정주영 회장이 결정한 이상 그 같은 위험은 다 각오가 돼 있다”면서 “정 회장은 한번 한다고 하면 그냥 밀고 나가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강 박사는 이후 “한국에선 64K D램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보고서를 작성, 현대로 보냈다. 그는 제록스의 배명승, 시스템컨트롤의 남종우, 포드의 이해연씨 등 다양한 인재를 추천했다. 현대는 이들 영입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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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천 현대전자 본사 전경

현대는 강 박사의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산업계에 진출할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1983~1987년 5년간을 세 단계로 구분, 반도체 분야 연구부터 투자·생산에 이르기까지 2900여억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의 움직임은 빨랐다. 1982년 11월 17일 전자산업 진출을 위한 현대그룹 사업계획서를 상공부로 제출했다. 이듬해 1월 1일 현대중공업 산하에 전자사업팀이 설치됐다. 2월 23일에는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현대전자) 설립 등기를 마쳤다. 현대전자는 직원 500명, 자본금 100억원으로 출발했다.

현대는 강 박사에게 현대전자 대표이사직을 맡기려 했다. 그러나 사내외 반발을 의식한 강 박사가 이를 고사하자 정 회장은 직접 대표이사 자리에 앉아 현대전자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현대의 전자산업 진출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계에선 `쇼크`라는 단어를 써 가며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현대의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이 구체화되자 삼성도 이 사업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강 박사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도약의 배경은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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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10일 이천 현대전자 공장 종합 준공식

삼성, 현대와 더불어 한국 반도체 삼국지의 한 축이던 럭키금성도 현대의 전자산업 진출에 자극을 받은 건 매한가지였다. 럭키금성은 1989년 5월 전략투자 대상으로 반도체 사업을 선정하고 여러 계열사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통합,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했다. 1995년 금성일렉트론은 LG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했다. 훗날 LG반도체는 `반도체 빅딜`로 현대전자에 흡수합병돼 하이닉스로 재탄생된다. 하이닉스는 다시 SK로 인수돼 SK하이닉스로 거듭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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