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 결정에 따른 한국과 중국 간 정치 관계 갈등이 대 중국 비즈니스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아직 경제 보복을 위한 중국 정부의 직접 정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경직된 분위기와 위협 요인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분야 비즈니스에도 타격이 직간접으로 나타나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 갈등으로 우리 기업의 대 중국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중국이 사업이나 무역 등을 위해 중국을 방문할 때 필요한 상용(비즈니스) 복수비자 발급을 일부 중단하고 한국 드라마 방송을 금지하는 등 경제 보복이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이 비자 발급에 제동을 걸면서 당장 우리 기업인들의 불편이 커졌다.
한국사물인터넷협회는 이달 17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사물인터넷(IoT) 전시회 참가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개 업체 50여명 규모가 참석하는 가운데 지난해까지 이용하던 상용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협회는 여행사로부터 관광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앞으로도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겪게 됐다.
협회 관계자는 “사업에 직접 타격을 주기보다는 `괴롭히기` 성격의 제재 같다”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 중소업체에는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신화망, CCTV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의 비판 기사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언론은 최근 한국산 화장품이 검역 검사에서 불합격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불량 밀수품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사드 배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KT스카이라이프는 중국 최대 콘텐츠기업 LeTV와 지난달 말 양해각서(MOU)를 맺기로 했으나 LeTV 측에서 사드 때문에 한국 기업인 KT스카이라이프와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연예인의 중국 활동 제약 등 `한류`에도 불안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중국과 사업하는 기업인으로서 제품 공동 개발과 수출, 결제 등에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사드 배치 결정에 따라 중국의 경제 보복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들도 피해가 당장 현실로 나타나진 않았지만 중국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우려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가 삼성SDI, LG화학의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인증 탈락시키는 등 견제가 강해지는 시점이어서 사드 관련 보복 조치가 더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자업계 대기업 관계자는 “중국이 조직 차원으로 움직일 때는 `가전하향`이나 최근의 스마트폰 보조금 지급 축소 등 정책이 먼저 제시됐다”면서 “아직 사드 경제 보복과 관련된 정책이 나오지 않아 현실에 와 닿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가뜩이나 중국 사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양국 분위기까지 경직돼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곳곳에서 중국의 보복 움직임이 감지되는 만큼 제도 변화 등을 살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복수비자 발급은 공무원도 힘들었을 정도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면서도 “이번 조치가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관계자는 “사드 배치 문제로 양국 관계가 정무 입장에서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아직 통상·무역 보복과 관련한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구체화되진 않지만 모니터링을 지속 강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