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와 `댓츠올(That`s All)`을 구분하지 못했던 초등학생이 글로벌 네트워크 기업의 최고기술위원(CTO)으로 돌아왔다.
배한상 리버베드테크놀로지 CTO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때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73년이다. 미 8군에 근무하던 아버지 손을 잡고 낯선 미국 땅을 밟았다. 영어 한마디 하지 못했던 그의 학창 시절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통이 안됐다. 어느날 학교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오렌지 주스를 나눠줬다. 옆에 있던 학생이 우리말로 “됐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 말이 `이걸로 끝`이란 뜻의 `댓츠올(That`s All)`이란 걸 알았을 때는 황당하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두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영어도 재미있고 배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글로벌 네트워크 기업 CTO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가 컴퓨팅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컴퓨터 게임` 때문이다.
배 CTO는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게임을 내려 받고 즐길 수 있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를 잘 알아야했다”고 말했다. 서툴지만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어느 정도 손을 댈 수 있어야 했다. 그는 “그때부터 컴퓨팅 사이언스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정보기술(IT)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라며 “지금도 비행기 시뮬레이션 등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작은 IT컨설팅 업체에서 일했다. 기업 IT환경을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해줬다. 그때 와이어샤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와이어샤크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 기반 패킷·네트워크 분석 툴이다. 제라드 콤이란 개발자가 이더리얼이라는 명칭으로 만든 소스코드에 20년 가까이 세계 개발자가 협업해 네트워크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수단으로 발전시켰다.
시티그룹으로 회사를 옮긴 배 CTO는 회사의 글로벌 엔지니어 리더 6명에 소속되기까지 오픈소스 기반 네트워크 기술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당시 IT 관점에서 폐쇄적이었던 미국 금융업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세대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생각으로 수개월 동안 회사를 설득했다. 결국 시티그룹이 100만달러규모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오픈소스 기반 네트워크 환경을 조성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기술 혁신을 체감한 그는 솔루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리버베드에 합류한 그는 와이어샤크 전도사가 됐다. 2010년 리버베드는 와이어샤크 개발 커뮤니티 후원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리버베드는 와이어샤크 기술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모니터링·성능 관리 솔루션도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배 CTO는 유튜브에서도 와이어샤크 강연하고 있다. 수 천명이 그의 강연 영상을 볼만큼 오픈소스 네트워크 업계에서는 인기가 높다. 국내에서도 개발자를 상대로 와이어샤크 강연을 열어 커뮤니티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