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경계해야 할 중국 반도체 장비 자립

“기술은 비등한 수준으로 올라왔고 가격은 40% 저렴합니다”

중국에 납품 중인 국내 장비사 임원의 말이다. 자사 주력 장비와 중국 경쟁사 제품을 비교한 것인데, 몇 년 전과 견줘 괄목상대할 만큼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고 토로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가 장비 산업에도 뻗어나가는 모양새다.

중국 장비의 추격은 이미 예고됐다. 미국·일본·유럽에 비해 반도체 장비 생태계가 빈약한 중국은 '국산화'에 집중했다. 2014년(1기)부터 올해(3기)까지 조성된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에 반도체 장비 기술 투자는 빠진 적이 없다.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자국 장비 없이는 반도체 굴기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대(對) 중국 반도체 제재가 더해졌다. 첨단 반도체 장비 반입이 미국 때문에 가로막히자 중국은 기술 자립화에 보다 속도를 내고 있다.

마치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를 보는 듯하다. 당시 일본은 감광액(PR) 등 주요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했는데, 공급망 위기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공격적인 연구개발(R&D)로 다수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수출 규제가 중국 장비 자립화를 앞당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한국 반도체 장비 업계다. 한국 장비는 미국·일본·유럽 장비와 견줄 기술에, 가격이 저렴한 독특한 시장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치고 올라온 중국산 장비와 다툴 첫 상대로 유력하다.

중국은 현재 범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과감한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은 '자국산 장비' 도입을 우선 고려할 공산이 크다. 국내 투자 부진으로 중국에 눈 돌렸던 많은 한국 장비사의 진입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장비 업계는 판로 다변화와 기술 격차를 벌리는 조치가 시급하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장비사에 대응, 어떤 경쟁력을 앞세울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시기를 놓치면 어느 순간 중국의 뒤를 쫓는 형국으로 바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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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준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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