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 출범했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고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출연연을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삼성, LG, 포스코 등은 출연연과 공동 개발한 신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기술 혁신이 진전되고 산업계 연구개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출연연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최근 들어 이렇다할 연구 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졌다. 30~40년간 변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조직 활력도 잃었다.
창조, 융합 등 기술과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둔감해지면서 출연연에 거는 국민의 기대와 관심도 약해지고 있다. 전자신문은 `출연연 대수술 급하다` 시리즈로 출연연이 처한 문제의 단면을 드러냈다. 철저하게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출연연 민낯을 드러내는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연재했다. 출연연이 계속 안주하고 변하지 않으면 이젠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초점을 맞췄다. 전자신문 시리즈를 시작으로 출연연이 스스로 변하고 개혁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출연연 개혁 논의가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0대 과제를 제안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치열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기대한다.
1. 새로운 30년, `큰` 연구소를 만들자
50년간 과학기술은 꿈이었다. 과학으로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뤘다. 출연연 탄생은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 재건 및 경제발전이다. `모방형 국가 혁신 시스템`이 핵심이다. 이 시스템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같은 세계적 기업이 탄생했다.
출연연 평가를 맡고 있는 관계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출연연 연구결과를 기업이 가져가지 않고 상용화하지 않는다”며 “특허가 많아도 쓰질 않고 기술료 수입을 다 합쳐 2000억~3000억원은 돼야 하는데 800억~1300억원은 너무 적다. 돌아오는 성과가 없는데 정부가 왜 돈을 주는지 본질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 부분별로 세분화한 출연연 시스템은 `융합`이라는 물결 앞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산업화, 정보화가 일어나면서 고유영역은 붕괴했다. ICT 발전은 출연연 시스템을 구닥다리로 만들었다.
현재 출연연 구조를 개방과 협력을 골자로 하는 `큰 연구소` 체제로 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타 연구부분 강점을 끌어들이고, 연구소 구성원간 융합 R&D가 일어나도록 벽을 허물어야 한다. 기업에서는 이미 마케팅부서와 연구부서, 연구부서 간 장벽은 없어진지 오래다. 산업계나 대학에서 항공우주, 생명공학, 기계공학, 전기공학, 통신 전파 등으로 분절된 영역 구분은 소용이 없다. 인문학과의 학제 간 융합연구도 일어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다루는 연구 분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A연구소가 만든 연구 성과를 모르는 B연구소는 다음해 제목만 다른 과제로 연구에 착수한다. 현재 시스템의 문제다.
과학기술계는 연구소를 하나의 거대 법인으로 묶는 일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단, 하나의 법인 아래에서 연구자에 대한 자율성 보장은 필수다. 거대 법인 컨트롤타워는 연구자 간 융합연구가 활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정부는 실행초기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단 법인을 통합하고, 각 연구소 행정조직과 연구조직을 당분간 그대로 운영하며 여러 조직문화가 결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이후 내부 논의를 거쳐 연구조직 간 장벽을 허물며 화학적 융합을 시도하는 방식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때 정부나 연구소 행정조직은 기존 업무보다는 각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연구 성과를 공유해 중복연구를 막고 연구 과제를 거대화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무분별한 인력감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 연구는 자율, 경영은 책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해묵은 숙제 가운데 하나가 연구 자율성 확보와 경영 책임제 도입이다. 지난 40년간 이 문제를 놓고 출연연 안팎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출연연 거버넌스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출연연 24개가 모여 연구에서 자율을 선언했다. 전문가인 과학자가 연구 대상과 연구방법을 스스로 선정하고 자율적으로 연구할 때 성과가 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출연연의 연구성과가 낮았던 이유도 자율보다 관치 연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출연연은 R&D 예산 4조5700억원을 집행했으나 기술료 징수액은 1334억원에 그쳤다. 2014년에 기술료 징수액은 800억원에 그쳤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나 정치적 외압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 연구 환경이 마련되면 보다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자율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5조원 가까운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성과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연구는 자율적으로 진행하되 경영 책임제를 도입할 것을 주문한다. 때론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해 연구뿐만 아니라 경영에서도 혁신을 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 대학 교수는 “자율성 부여 차원에서 외부 감사를 줄이고 자체 감사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라며 “대신에 출연연 감사 전문성과 책임을 부여하고 성과가 낮으면 불이익을 강화하는 식으로 당근과 채찍 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013년 10월 연도별로 시행하던 기관평가를 `중간컨설팅평가(경영부문 중간평가+연구부문 중간컨설팅)에서 종합평가`로 바꿨다. `R&D 혁신방안`에서 경영부문 중간평가 폐지, 연구부문 중간컨설팅 자체 실시 및 목표별 성과지표를 3개 이내(현재 10개)로 축소하는 등 자율성 강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반면에 평가결과 `미흡` 이하 기관의 출연금 삭감률을 높이는 등 책임성 강화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3. `미래 먹거리`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
“국가 연구개발이라는 출연연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거의 비슷한 연구 주제를 놓고 대학과 기업이 경쟁하는 웃지 못할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출연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국가만 감당할 수 있는 기초연구와 거대 과학 프로젝트, 그리고 엄청난 자금과 리스크 때문에 민간이 하기 어려운 연구 주제에 천착하는 것이다. 국가 최고 연구기관으로서 기업과 대학이 수행하지 못하는 원천, 대형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은 시대를 초월한 변함없는 고유 목적이다.”
전자신문 2008년 6월 10일자 사설이다. 8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비슷하다. 그만큼 출연연이 지난 세월동안 제대로 된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서는 안 된다.
출연연이 제 역할을 하려면 국가가 과학기술 R&D로 무엇을 달성하려고 하는지, 이를 위해 출연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형 프로젝트 남발은 연구보다 보고서 쓰며 허송세월 보내는 연구자를 양산시킨다. 대학이나 기업 등 민간에서 담당하기 어렵거나 시장 메커니즘으로 확보되기 어려운 우주항공, 해양, 원자력, 핵융합 등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한 거대 과학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신종질병, 고령화, 국가재해·재난 대응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되며 사회 전체에 파급효과가 큰 공공적 성격의 사회 기반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R&D 기획 방법의 현행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출연연에서 은퇴한 한 원로 과학자는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처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고민하는 톱다운 방식의 R&D 기획이 있어야 한다”며 “DARPA는 이 같은 방식의 R&D로 현재 상용화된 이더넷과 GPS 등을 개발했다”고 강조했다.
GPS를 예로 들면 `내 위치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던져놓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R&D로 찾으라는 식이다. 그렇게 나온 것이 현재 상용화된 위성 4개로부터 신호를 받아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찾는 GPS 이용 방법이 나오게 됐다.
오진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퍼스트 무버와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초기단계 기술을 기획할 수 있는 `R&D 착상 엔진 프로그램`과 기술로드맵을 보완한 `기술 숲지도`를 제안했다. 오 책임은 “국가 R&D는 과제 지원 시스템을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4. 인적자원 선순환 메커니즘을 만들자
조직이 고령화돼가는 출연연에 활력을 넣으려면 수혈이 필요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 25개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5월 말 기준 3947명이다. 정규직 전체 인력 1만1862명의 33%에 해당하는 숫자다. 2011년엔 비정규직이 50%(전체 1만85명 대비 5205명)가 넘었다. 신규 고용자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더 높다. 지난해 국감에서 밝혀진 바로 2012년부터 2015년 6월까지 연구직 5903명 중 비정규직 신규가 4197명으로 70%를 넘는다. 비정규직의 잦은 이직은 연구효율이 낮아지는 주요 이유가 된다.
출연연은 자율적으로 연구 인력을 채용할 수 없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통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연구 인력 정원(TO)제를 폐지하고 인력은 각 연구소에서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위임하고 전체 인력규모를 NST 등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세계 수준의 우수한 신진인력 채용을 위한 과감한 인센티브 도입도 시도할 것을 주문한다.
한 ETRI 전임 원장은 “채용 시 박사학위를 중시하기보다는 학력을 과감하게 철폐할 필요가 있다”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사 학위자를 뽑으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금방 노화되고 현재와 다를 바가 없다”며 “학위보다 혁신적인 아이템이 있는지 개인 면접·발표 등으로 검증하는 새로운 시도의 채용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전 미래부 과학기술전략본부 고위 관계자는 “출연연, 대학 신입 연구자들은 PBS 제도를 적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를 5년간 할 수 있게 하고 그 중 미래싹이 보이는 연구들을 선별해 5년 더 후속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출연연에 적용해보려고 했으나 25개 기관과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어 제도 적용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고령화한 연구 인력을 위한 명예 퇴직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전문가들은 대학, 기업과 연계하거나 연구소기업에 전문 경영인을 매칭시켜주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것을 제안한다.
5. 기관장 임기 늘려 리더십 회복
출연연 기관장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로 짧은 재임기간이 종종 지적된다. 연임이 가능하지만 평가기준이 높은데다 임명직이라 현실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 때문에 기관장이 장기나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보다는 짧은 기간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연연 기관장 임기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과기출연기관법)`에 3년으로 돼 있다. 출연연 기관장을 지낸 한 인사는 “연구개발 특성상 기관장이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펼칠 수 있어야 하지만 3년 중 1년은 업무파악하고 조직을 재정비하느라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며 “이러다보니 레임덕을 빼고 실제 일을 할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관장이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위한 여건이 부족하다 보니 가시적인 성과 위주의 기관 평가로 단기적 결과 창출을 위한 기관을 운영하는 단점이 나타난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경쟁력 강화 방안` 보고서에서 “기관장 임명과 관련해 역대 정권에서 기관의 고유사업이나 미션 부여 없이 임명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기관장 임기 3년은 40여년 전 시스템으로 이 짧은 기간 동안 국가 장기 목표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연구기관장의 임기는 최소 4년이고 연임과 종신도 가능하다.
기관장 임기 연장과 함께 정치성, 파벌, 줄서기 등을 차단하고 연구·경영능력이 탁월한 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위원회 제도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PBS 제도로 연구비 배분권이 미약한 것도 개선과제로 꼽힌다. 기관장이 새로운 비전을 갖고 새로운 연구과제를 진행하려고 해도 PBS 제도가 종종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최근 기관장 임기 연장과 관련해 STEPI를 통해 용역 과제를 수행했다. 책임경영 확보를 위해서는 기관장 임기개선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NST 관계자는 “이 같은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미래창조과학부 등과 함께 과기출연기관법 개정 등을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6. 과학 정책 어젠다 일관성 유지
국가 과학정책 어젠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병폐도 사라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책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장기 프로젝트도 가능하고 질적 성과도 이룰 수 있다는 지적이다. 출연연은 정치적 변화에 따라 개편을 반복해 왔다. 출연연 내부나 기관 단위 변화보다는 소속 부처와 상위조직 변경 위주로 진행돼 왔다. 반면 출연연의 제도적 개선을 위한 개편 시도는 1991년 출연연 기관평가제도의 도입, 1996년 PBS 제도 도입 이후 큰 변화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술연구회를 폐지하고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각각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로 이관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양대 연구회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시켰다. 2014년에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를 상위기관으로 만들어 기초연과 산업연을 통합시켰다. 내세우는 구호도 다르다. 이명박 정부에선 녹색성장, 한식 글로벌화 등이었고 박근혜 정부에선 창조경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치적 어젠다와 과학정책 기조는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ADL 보고서를 보면 출연연 여러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과학기술계에 작용하는 과도한 관료주의`라고 지적한다. 출연연에 정권 구호에 맞게 성과 창출을 압박하거나 기획·평가에서의 비전문성으로 출연연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정치적 외압은 결국 출연연 연구원들 의욕과 사기를 떨어뜨려 결국 미흡한 연구 성과로 이어진다. 연구성과가 미흡하면 정부나 정치권의 간섭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악순환이 지속된다.
거버넌스 구조가 일으키는 문제도 심각하다. 하나의 연구소 입장에서 보면 잦은 상위 거버넌스 개편으로 어느 부처와 연구회 소속인지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종류의 연구행정 협력과 융복합 협력연구 네트워크를 만들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정책과 거버넌스 문제는 결국 연구 네트워크 형성이나 기관평가 문제들과 맞물려 있다. 이미 연구개발 과제기획 단계에서 부처간 경쟁이 반영돼 중복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연구기관 간 전략적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이 문제는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혁신정책 전반의 개혁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7. 우주개발사업 외부 전문가 수혈
우리나라 연구개발(R&D) 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프로젝트는 2017년 시험 발사를 시작으로 △2019년 12월 1차 발사 △2020년 6월 2차 발사 △2020년 달 탐사 계획이 들어 있다. 정부는 2010부터 2021년까지 2조원에 가까운 총사업비 1조9572억원을 배정했다.
우주개발사업은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도 크다. 당장 한국형 발사체가 개발되면 국내 인공위성 발사 때 해외 발사체를 이용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미래 우주자원개발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도 서둘러야 하는 국책 과제다.
하지만 한국형 발사체 개발은 기술 확보가 어렵다. 최근에는 발사체 엔진, 산화제 탱크 등 핵심 부품 개발이 늦어지면서 2017년으로 예정된 시험 발사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주개발사업의 핵심인 발사체 개발이 늦어지면 우주산업 경쟁력도 그만큼 뒤처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발사체 개발 프로젝트에 과감한 외부 전문가 수혈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한 대학 교수는 “선진국이 이미 30~40년전 발사체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 전문가를 파격적으로 영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출연연 내부 인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민간 기업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나 기술이 있다면 이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민간 기업도 우주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페이스X는 발사체를 10번 재사용하고 발사비용을 100분의 1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을 정도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적극적인 인재 영입과 외부 기술과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한 개방형 조직으로 탈바꿈하면 조직내 선의의 경쟁을 촉발하는 한편 병폐로 지적된 `파벌 싸움`도 크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8. 인사·평가 방식 개편
인사와 평가 방식 개편도 필요하다. 엄격한 성과평가가 실시돼야 한다. R&D 투자효율성에 엄격한 성과평가를 실시하고 소속 연구기관 평가결과는 예산, 조직의 확대·축소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평가가 연구기관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기초연구 분야에서는 사업화가 아닌 논문 실적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연구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각종 평가가 많은 반면 평가 결과 활용은 미흡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각 출연연이 수행해야 할 임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계획서에 근거해 출연연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년 주기의 연차평가(모니터링)와 5년 주기 종합평가를 실시하고 각 출연연은 임무와 기능이 다른 만큼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연구자 개인평가는 목표관리식(MBO)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우수성과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할 것도 주문한다. 이럴 경우 연속적으로 성과가 미흡한 연구자들은 소속 출연연 기관장 책임 하에 퇴출 등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연구자 개인평가에서 온정주의 관행을 없애는 것도 과제다. 지금까지 출연연 퇴출 연구자가 사실상 전무한 것도 온정주의 관행 때문이다.
송철화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장은 “R&D 성과 평가 기준과 방법에 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정량적 평가지표 적용에 따른 줄 세우기식 평가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목표 설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평가방식으로 `질적 목표 중심의 정성적 평가`를 위해서는 각 기술분야별로 전문인력 임계규모가 부족한 국내현실을 고려해 평가위원 선정 과정의 상치제도 적용을 완화해 전문가 참여로 실질적인 평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9. 연구와 경영 분리…외부 경영 전문가 영입
“연구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 연구원과 경영인의 길을 나누고 연구원은 끝까지 연구원의 길을 가고 보직을 맡은 사람들은 보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이 둘을 왔다갔다 하는 `순환보직제`는 연구와 경영 모두 경쟁력이 떨어지게 한다.”
과학기술계 한 원로의 말이다. 본인에게 출연연 개혁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면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연구자가 행정보직인 경영자로 가고, 보직이 끝나면 다시 연구자로 돌아가는 순환보직제가 대부분이다.
연구를 잘 하고 있던 출연연 연구원은 부장, 본부장 등 보직자로 인선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리더십, 직원관리, 소통 등 경영 전반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보직을 맡는 경우도 많다. 연구와 달리 경영이나 조직관리에서 미진한 사례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보직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연구자`로 돌아오면 연구 현장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출연연 연구 성과 저하로 이어진다.
연구자들에 행정부담 완화도 절실하다. 연구에 전념해야 할 연구자들이 회의 참석, 서류작성 등 행정업무에 매달리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연구원들이 행정업무에 매달려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행정업무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사람은 행정보직의 길을 가고 연구원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전문 경영인도 과감하게 선발해 연구와 경영을 전문적으로 분리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온정주의나 파벌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경영 전문가가 합리적인 경영과 열린 조직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높다.
10. 소명의식을 회복하자
“셀러리맨만 넘쳐나고 과학자가 사라졌다.”
전직 출연연 기관장을 지낸 A씨는 출연연 연구자들의 소명의식이 많이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출연연 연구자들이 날밤을 새며 신기술을 개발하던 열정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1970~80년대 활약한 원로 과학자들은 과거보다 지금 연구여건은 훨씬 나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자에 대한 대우나 연구개발 예산이 과거보다 수십배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1970년 3800억원에 불과하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이제 5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출연연의 효시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원로 과학자는 “KIST가 처음 출범할 때는 박봉에 시달렸지만 우리나라도 산업화에서 선진국을 쫓아가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며 “미국이나 일본의 기술을 국산화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하면서 빠른 시간에 이들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세계 1위에 오른 한국 TV나 휴대폰은 출연연과 기업이 합심해 신기술을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상용화한 결과다. 1990년대 후반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한국이 휴대폰 강국 반열에 오른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자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 세계 표준을 주도할 수 있고, 우리나라 휴대폰 산업이 세계 일류가 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연구에 매진했다”고 강조했다.
출연연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연구자도 공공의 책무를 부여받아 국민을 대신해 국가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직업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공직자 못지 않게 애국심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서울지역 한 대학 교수는 “기업이나 대학의 연구자와 출연연의 연구자는 임무가 다르다”며 “출연연은 공익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인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과 사명감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