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할 당시 주변 반응은 냉랭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비웃었다. 미쯔비시 연구소는 △삼성은 기술력이 없다 △회사 규모가 작다 △한국 내수 시장이 형편없다 △전후방 산업도 빈약하다 △사회간접자본 역시 모자란다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삼성 반도체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보기 좋게 빚나갔다. 현 시점에선 일본 반도체 산업이 몰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성은 1983년 마이크론과 64K D램 기술이전 계약을 맺는다. 당시 이윤우 연구소장(삼성전자 부회장 역임)을 포함한 삼성 엔지니어 여럿이 어렵사리 64K D램 기술을 배웠다. 당시 동행한 조수인 과장(삼성전자 사장 역임)은 방문자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마이크론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현지 모텔에서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약 9년 뒤 삼성은 이 같은 설움을 날려버렸다. 1992년 세계 최초 독자 기술로 64M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삼성이 경기도 기흥에 첫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때 일이다. 당시 공장 진입로는 도로 포장이 안 돼 있었다. 작업자들은 값비싼 반도체 포토 장비를 운송하지 못할까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포토 장비는 진동에 민감해 자칫 운송하다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삼성은 이를 해결하고자 4㎞에 달하는 거리를 단 반나절만에 포장했다. 이 공장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지시로 6개월 만에 완공됐다. 통상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통상 1년 6개월이 걸린다. 3분의 1로 단축시킨 것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다.
#1986년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는 삼성전자에 특허 침해 소송을 걸었다. TI는 삼성전자가 자사 특허를 사용해 D램을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소송에 졌다. 8500만달러를 배상금으로 물어냈다. 그 해 영업이익의 80%가 넘는 돈이었다. 삼성전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특허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미국 내 삼성전자 특허 취득 건수는 IBM에 이어 10년째 2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1987년 삼성 중역들은 신임 이건희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을 포기할 것을 건의한다. 2년 전부터 D램 가격이 계속 떨어져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어찌 그럴 수 있느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8년 반도체 호황이 찾아왔다. 삼성은 그동안 투자했던 재원 이상을 반도체 사업에서 벌어들였다.
#1990년대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보존되는 비휘발성 플래시 메모리의 주류는 노어플래시였다. 노어플래시는 읽기 속도가 빠르고 안정성이 우수하지만 대용량화가 어렵다. 인텔과 AMD 등 세계 반도체 업계는 노어플래시에 집중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를 선택한다. 2000년대 들어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낸드플래시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현재 비휘발성메모리의 주류 기술은 낸드플래시다. 삼성전자는 이 분야 세계 1위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