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가관이다. 비난과 추문, 비방이 난무한다.
본선은 시작도 안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은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아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오는 7월 전당 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로 추대해야 공식 후보가 된다. 트럼프와 힐러리 앞에 사실상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특이하다. 직선제와 간선제가 섞여 있다. 득표를 많이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다.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야 대통령이 된다. 선거인단은 주별로 숫자가 다르다. 총 538명으로, 인구수에 따라 차등을 뒀다.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다. 55명이다. 가장 적은 주는 3명인 알래스카다.
`지역별 승자 독식`. 미국 대선의 특징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간다. 캘리포니아에서 A당이 51%, B당이 49%를 얻었다면 A당이 55명의 선거인을 모두 가져간다. B당은 49%를 얻었지만 한 명도 못 가져간다. 49% 지지율이 제로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을 지지율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지율이 더 높았지만 대통령이 못 된 불운한 사람이 앨 고어다. 2000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인 앨 고어는 48.4%를 득표, 47.9%에 머문 공화당 조지 부시보다 앞섰지만 대통령은 부시가 됐다.
현재 선거인단만 보면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유리하다. 힐러리는 538명 가운데 201명, 트럼프는 164명을 확실한 우세로 평가된다. 나머지 173명(13개주)은 부동층에 해당한다. 그 가운데 콜로라도(9명), 미시간(16명), 펜실베이니아(20명), 네바다(6명) 주는 민주당의 전통 우세 지역으로 꼽힌다. 힐러리는 판세 분석 결과 이들 지역과 다소 우세한 지역을 포함해 46%(252명)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1등이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매직 넘버 270에서 18명이 부족하다. 반면에 트럼프는 79명이 부족하다.
힐러리와 트럼프는 역대 최악의 비호감으로 꼽힌다. 우선 힐러리는 `이메일 스캔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 국무장관 시절에 사적으로 사용한 이메일 사건은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 소환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메일뿐만이 아니다.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벌어들인 거액의 강연료도 힐러리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잠재적 폭탄이다.
트럼프도 막말로 악명이 높다. 미국 경제에 분노한 백인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공화당 후보로 낙점받기 일보 직전이지만 그를 반대하는 시위는 날로 거세진다. 최근에는 폭력 사태와 함께 그를 나치에 비유하는 시위도 발생했다.
트럼프의 막말을 보면 `어쩌다 이런 사람이 대선 후보가 됐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민주정치가 우중(愚衆)정치가 됐다. 힐러리를 향해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한 사람”, 자신을 몰아세운 여성 앵커에게는 “밑에서 피를 흘리는”이라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의 막말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이웃나라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슬로건이 `위대한 미국 재건`이다. 위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업률이 낮고, 경제가 웬만큼 돌아가고, 자기만 잘살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사회는 편협해서는 안 된다. 종교나 신분에 차별 받지 않아야 하고, 땀을 흘린 만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 소수민족, 소외계층 같은 사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자국도 중요하지만 세계 이익과 평화도 중요하다. 이웃 국가를 배려해야 한다. 이것이 위대한 국가다.
방은주 국제부장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