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장비 협력사에 사업 내용 유출 시 계약금의 수 배 배상을 주문했다. 최근 대규모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장비를 발주한 뒤 내놓은 강력한 정보보안 정책으로 해석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디스플레이는 각 협력사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비밀유지협약서(NDA)를 발송했다. 최근 대규모 설비투자를 수주한 국내 협력사가 주 대상이다. 앞으로 맺을 계약은 물론이고 이전에 맺은 계약까지 모두 적용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국내 협력사뿐만 아니라 해외 협력사에도 이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강도 높은 정보보안을 주문한 것은 최근 애플과 플렉시블 OLED 공급계약을 맺은 뒤 강화된 정책이어서 주목된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패널물량 규모, 기술방식, 전체 설비 투자 규모 등이 외부로 새어나가면 강력하게 항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10배 배상 조건이 담긴 계약의 경우 100억원짜리 사업을 수주한 협력사가 사업내용을 유출했다는 정황이 입증되면 10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장비 기업은 연매출 2000억~3000억원 규모가 대다수여서 배상 규모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 재료 기업도 부담이 크다.
이미 삼성디스플레이 주요 협력사는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에스에프에이, 원익IPS, AP시스템 같은 대표 협력사는 일반 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지난 실적을 설명하고 앞으로 시장 상황을 설명할 때 관련 내용이 포함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AP시스템은 주요 계약 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은 백지 공시를 내기도 했다.
업계는 앞으로 백지 공시 사례가 늘거나 공시 대상에서 해당 수주 내용을 제외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상장사나 기업공개(IPO)를 목표한 예비상장사는 당장 실적 관련 사업 내용을 외부와 공유할 수 없어 고민이 깊어졌다.
일각에서는 정보유출 원인을 외부 협력사에 지나치게 돌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해당 기업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는지 여부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애플은 추진 중인 사업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 분위기”라며 “삼성디스플레이와 계약을 전후로 상당히 구체적 사업내용이 업계에 알려진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제기해 강도 높은 보안정책을 만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각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LG디스플레이도 애플 관련 사업에 비교적 높은 수위의 정보보안 정책을 적용한다”며 “앞으로 추가 설비 투자가 예정된 만큼 삼성디스플레이가 강도 높은 보안 정책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